[가족창업]처남.매부가 차린 이동자전거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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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9일 오후 경기도성남시분당구의 한 아파트 단지. '이동 자전거병원' 이 방문하자 기다리던 주부.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아저씨, 제 자전거 체인 좀 바꿔주세요. " "아이구, 총각 아저씨는 이제 자전거 기술자 다됐네. " 이동 자전거병원의 창업자이자 직원인 임상용 (林相瑢.26) 씨와 윤재호 (尹才豪.32) 씨. 처남.매부 사이인 이들은 연신 쏟아지는 '고객' 들의 주문과 칭찬에 환한 웃음으로 답하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고장난 자전거처럼 기죽어 지내던 실업자 가족. 그러나 이젠 아이디어와 가족애로 다시 일어선 창업 일가다.

직장에 다니던 매부는 일자리를 잃고 대학을 졸업한 처남은 취업을 못하고…. 국제통화기금 (IMF) 사태는 이들 가족에게도 큰 시련을 안겨줬다.

매부 尹씨는 지난해 2월 자재담당으로 6년간 일해오던 건설회사가 도산하자 실직자가 됐다.

지난해 8월 경원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처남 林씨는 수십군데도 넘는 회사를 찾아다녔으나 끝내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누가 누구를 위로할 처지도 못됐던 이들. 그러나 희망은 우연처럼 찾아왔다.

지난해 10월 일자리도 알아보고 안부도 전할 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던 尹씨에게 고교 동창 유성무 (柳聖武.32) 씨가 아이디어를 건넸다.

요즘엔 자전거를 고치고 싶어도 못고치는 아이들이 많으니 이동 자전거 수리점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이거다 싶더군요. '이왕이면 아파트 부녀회와 정식 계약해 사업을 키워보자' '폐자전거를 수리해 판매도 하자' 등 아이디어가 꼬리를 물었어요. " 尹씨는 즉시 경기도일산의 한 아파트 단지를 방문해 봤다.

동마다 설치된 자전거 거치대엔 20여대씩의 자전거들이 흉하게 녹슨 채 버려져 있었다.

조금만 손보면 금방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尹씨는 처남 林씨에게 동업을 제의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林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틀밤을 새워 사업성 검토보고서까지 만들었다.

즉시 사업에 착수한 두 사람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을 방문, 부녀회와 자전거 수리 및 폐자전거 수거 권리를 독점하는 계약을 하기 시작했다.

계약기간 1년에 계약금은 3만원. 한 달만에 분당.일산의 1백여 아파트 단지와 계약했다.

단돈 3백만원으로 신도시 일원의 자전거 수리권을 독점한 것이다.

지난달 매출액은 3백50만원. 계약한 1백여 단지 가운데 10단지를 순회한 결과다.

"날씨가 풀리고 좀더 많은 단지를 돌게 되면 매출액이 몇배로 뛸 것으로 기대합니다. 자전거 재활용 전문 체인점을 꾸리는 게 올해의 목표죠. "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서로를 밀어주고 끌어주며 다시 일어선 처남.매부는 환하게 웃었다.

02 - 2237 - 8252.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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