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가오는 밀레니엄 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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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주 의회에서 1999년도 연두교서를 발표하면서 새로운 무역자유화 협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클린턴 대통령의 주장은 우리나라에서 별다른 뉴스거리가 되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우루과이 라운드 (UR) 협정에 따르면 2000년에 농업과 서비스 협상이 재개돼야 하며, 최근에는 21세기 세계무역질서를 관할할 소위 밀레니엄 라운드의 필요성이 자주 논의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새로운 무역협상의 출범을 언급한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에서 미국 대외통상정책의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첫째, 미국 행정부가 대외통상협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행정부의 '신속처리권한 (Fast-track Authority)' 을 미 의회로부터 받아내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 의회는 환경 및 노동분야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지난 수년간 이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의 다자간 투자협정에 대한 협상과 아태경제협력체 (APEC)에서의 분야별 조기자유화협상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신속처리권한의 미비에 따른 미국의 협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따라서 클린턴 대통령은 새로운 무역협상의 필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의회로부터 신속처리권한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두번째 시사점은 미국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무역수지적자를 줄이기 위해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지난해 11월 한달동안 미국의 무역수지적자가 1백55억달러에 달했으며, 지난 한햇동안 미국의 무역수지적자가 사상 최고치였던 87년의 1천5백34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미 행정부와 의회를 긴장시키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앞으로 상대국의 시장개방 확대와 수입제한에 총력을 기울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시장인 동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금융위기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어 앞으로의 무역협상이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세계무역기구 (WTO) 의 주관아래 개최될 새로운 무역협상은 포괄적인 의제를 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까지만 해도 미국은 WTO에서 개최되는 다자간 무역협상의 실효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해 왔다.

따라서 미국은 이번 무역협상의 의제선택과 관련해 유럽연합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과 한국을 포함한 주요 개도국들과는 다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즉 미국은 여러 의제를 한꺼번에 포함시켜 협상하기보다 자국의 이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수 분야의 의제만을 채택해 심도 있는 시장자유화를 이뤄낸다는 전략을 구상해 왔다.

그러나 이번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을 계기로 앞으로 있을 밀레니엄 라운드는 포괄적 의제를 다루는 협상이 될 것임이 명백해졌다.

따라서 차기 무역협상에는 공산품.정보기술제품.농산물 및 서비스 무역의 자유화 확대 등 기존 의제뿐 아니라 투자.경쟁정책.정부조달.환경.전자상거래 등 새로운 의제들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세계 최대 경제강국인 미국은 올해 매우 적극적인 대외통상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미국에 대해 사상 최대규모의 쌍무적 무역수지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중국과는 통상마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대미 (對美) 무역수지도 97년 84억달러 적자에서 98년에는 20억달러 이상의 흑자로 반전돼 양국간 통상관계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자연히 차기무역협상에 관해 논의할 올해말의 WTO 각료회담도 선진국과 개도국간은 물론 선진국들간에도 의견이 첨예하게 나뉘어 매우 어려운 진통이 따르게 될 것이다.

이렇듯 올해에는 세계무역환경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무역자유화협상에 불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UR에서 경험한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협상을 주도해나갈 정부는 협상의 기본목표와 전략을 세우고 이를 업계와 국민들에게 이해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무역자유화 확대로 어려워질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대책마련에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역자유화협상의 최우선 목표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상품과 기업을 보다 넓은 세계시장으로 진출시키는 데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역자유화는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과 제도개선에도 도움을 준다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즉 무역자유화를 통해 새로운 경쟁이 도입되고 무역 관련 제도가 국제규범에 맞게 개선되면 우리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제고되고 외국인 투자여건이 좋아질 수 있다.

또한 다자간 무역협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를 차질없이 이행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대외신뢰도를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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