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상에게 듣는다]4.다우코닝 리처드 해질튼 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 만난사람 = 유종근 전북지사.대통령 경제고문

중앙일보 신년기획 '위기의 해법 - 세계 경제정상에게 듣는다' 시리즈 4번째로 미 다우코닝사의 리처드 해질튼회장 (57) 을 찾았다. 미 일리노이주 출신인 그는 퍼듀대 공대를 졸업한뒤 다우코닝에 입사, 유럽지사장.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94년부터 대표이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 기획은 KBS 협조로 제작됐으며 이 내용은 KBS 원단 특별기획 '세계 경제정상을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방송됐다.

▶유종근지사 = 지난해 28억달러 규모의 투자대상지로 한국을 고려하다 왜 포기했습니까.

▶해질튼회장 = 새 공장 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2년동안 아시아 각 지역을 조사했고 한국도 유력한 후보중 하나였습니다. 시장성.수송경로.원료 획득 등 제반 요건을 심각하게 고려한 결과 말레이시아에 투자하기로 결론을 내렸지요. 한국을 선택하지 않아 실망했다는 것도 알지만, 이 때문에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는 생각지 마십시요. 한국의 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갈 예정입니다.

▶유 = 한국에 추가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해질튼 =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확고한 투자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사업결과에 만족하고 있으며, 한국이 지금의 어려움만 이겨내면 틀림없이 크게 성장할 거라 믿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기는 곤란하지만 한국에 계속 투자할 예정입니다.

▶유 = 한국시장에 발을 들여놓은지 20년이 됐다고 했는데 성과가 어땠나요.

▶해질튼 = 연간 매출이 1조원 정도인데, 한국의 경제구조로 보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 입장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5번째로 큰 시장이 될만큼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유 = 각국이 외국 투자 유치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장점과 단점은 무어라고 보십니까.

▶해질튼 = 한국이 매력적인 투자대상이 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째, 아주 역동적이며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시장이란 점입니다. 둘째, 동기가 분명하고, 잘 훈련되고 교육받은 노동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반면 단점이나 한계라고 한다면 아직 한국은 수출이외에는 국제 시장에 완전히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세계 경제에 융합돼야 하며 앞으로 그렇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유 = 투자를 결정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시합니까.

▶해질튼 = 사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원자재 확보와 수송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물론 에너지가 충분히 공급되는지, 잘 훈련되고 교육된 인력이 있는지도 중요한 고려요소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투자대상국의 정책과 규제 등도 주요 변수가 됩니다.

▶유 = 그런 변화에 대해서는 김대중 대통령도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편안한 나라로 만들겠다' 고 약속했고, 각종 법률.규정을 대폭 개선해서 외국 투자가들이 느끼는 장벽을 없애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해질튼 = 많이 좋아졌습니다. 김대통령은 비전을 가지고 있고 세계 경제에 발맞추기 위해 한국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비전이 하루 아침에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죠. 어디서나 저항은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이 지금처럼 계속 한다면 뚜렷한 진보가 있을 겁니다.

▶유 =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질튼 = 15~20년전 아시아와 다른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인들은 그들의 관습이나 사업방법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미국인들이 그들의 습관에 익숙해지고 그들로부터 배우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죠. 한국경제도 이제 외국 회사들에게 좀 더 개방적이 된 만큼, 우리가 겪었던 그런 과정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 한국에서는 지난해 경제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국제적 표준' 에 관한 논의가 많았습니다. 일부에서는 그런 국제화가 결국은 미국인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자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해질튼 = 그럴수도 있겠죠. 국제화는 절대 어느 특정국가의 관습이나 문화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교류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좋은 점을 배우는 것입니다. 다우코닝만 해도 한국.일본 등 아시아에서 품질관리.고객서비스 등 현지 직원들로부터 배운게 많습니다. 하지만 기술이나 경영방식에는 미국인들로부터 배워야 할 장점도 틀림없이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배우려는 자세죠.

▶유 = 아시아 경제 위기 때문에 매출이 크게 줄지는 않았습니까.

▶해질튼 = 원화 등 이 지역의 화폐가 평가절하되면서 달러 기준으로 타격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시적 현상이라고 봅니다.

▶유 = 외환위기 이후 한국정부에서는 공공부문.자금, 그리고 기업.노동시장 등에서 다각적으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 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엇갈리는 평가들이 있는데 어떻게 보는지요.

▶해질튼 = 한국정부가 취하고 있는 조치들의 방향은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혁속도가 적당한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를 해 봐야겠죠.

▶유 = 한국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때문에 고통이 많았습니다. 다우코닝도 최근 몇년새 대대적인 정리해고를 한 적이 있는지요.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대처했습니까.

▶해질튼 = 지금까지 어느 한 공장에서 한꺼번에 직원들에 대한 대규모 감원을 단행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시아지역의 어려움 역시 대량감원을 통해 해결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직원들에게 충분한 기술과 훈련을 받도록 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갈 것입니다. 그래야 고용을 많이 줄이지 않더라도 생산성을 떨어뜨리지 않는 기술을 쌓을 수가 있으니까요.

▶유 =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미국에서도 노동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다우코닝은 어땠습니까.

▶해질튼 = 전 세계에 다우코닝에는 9천명의 직원이 있습니다. 그 중 절반 가량은 미국에 근무하죠. 나머지는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유 = 최근 다우코닝이 파산을 신청했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좀 설명을 해주시죠.

▶해질튼 = 우리가 만드는 유방확대용 실리콘 겔이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주장 때문에 몇년 전부터 소송에 휘말려 왔습니다. 그래서 이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현재 미국 법률에서 적용되는 파산의 일부 특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소송에 관련된 문제이지, 결코 우리 회사가 금융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는 아닙니다.

▶유 = 다우코닝의 파산은 어디까지나 법률적인 방편일 뿐 문제가 없다는 말씀이군요.

▶해질튼 = 그렇지요. 방금 말한대로 이건 법률적인 조치일 뿐 회사의 재무구조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유 = 켄터키에 있는 다우코닝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환경에 대해서 정성을 쏟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습니다.

▶해질튼 = 우리는 화학제품을 생산.처리함에 있어서 절대 환경을 해치지 않겠다는 운동을 주도적으로 벌여왔습니다. 따라서 생산 공정에서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고, 또 근로자들한테도 해가 되지 않도록 공장시설을 관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엄청난 자본을 투입해 왔습니다.

▶유 = 경영의 주안점을 어디에 둡니까.

▶해질튼 = 고객의 요구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그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기술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유 =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최우선이라는 말씀이군요.

▶해질튼 = 바로 그 점입니다. 저희는 고객을 이해하고 고객의 필요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기술이나 제품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파악한 다음에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죠.

정리 = 유권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