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323.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제7장 노래와 덫

포장마차 휘장 밖으로 나선 변씨의 거동은 동물적이었다. 휘장 밖으로 나선 변씨는 다짜고짜 배말자씨의 멱살부터 뒤틀어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턱이 동서남북을 망라하고 휙휙 돌아가도록 손찌검해서 반 정신을 빼놓은 뒤, 포구의 하역장 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변씨의 완력을 뿌리칠 재간이 있을 수 없었다. 낮에는 어물난전이 열리는 하역장에는 빈 어물상자를 쌓아 둔 호젓한 모퉁이가 있었다. 가로등이나 채낚기 어선들의 불빛들도 차단되는 장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마침 그들을 목격한 행인들도 없었다. 어물상자 뒤켠으로 돌아간 변씨는 드잡이했던 손을 놓고 배말자씨에게 물었다.

"진작 이혼수속 해 버리지 못한 불찰로 내가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게다. 하지만, 우린 진작부터 깨어진 옹기그릇 아닌가. 다시 꿰맞출 수가 없다는 것을 대한민국 박물관에 내놔도 화냥년으로는 손색없는 네년이 모를리가 없을 텐데, 왜 느닷없이 나타나서 진득이처럼 들어붙어 피를 말리려 드는 이유를 말해 봐. 만에 하나 이런 개 같은 부부 사이가 원상 복구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테지? 그렇다면 필경 피치못할 까닭이 있을 터, 소낙비 인편에 뚝 떨어진 두꺼비처럼 갑자기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이유가 나변에 있나?"

"형식이 아부지?" "이런 니기미…. 똥개 주둥이에서도 감히 형식이 소리가 나오나? 그래 좋다. 설혹 나같은 개차반의 남편은 심에 덜 차서 야반도주했다 치자, 지 속으로 내지른 금쪽 같은 혈육까지 버리고 떠난 계집이라면, 어미 되기를 진작 단념한 게 분명할 텐데 지금 와서 형식이라? 씨발년. 형식이가 니 맘대로 뗐다 붙였다 하는 국회의원 선거 벽보냐?"

"듣자듣자 하니까 너무하네요? 내 주둥이가 언제 개주둥이로 둔갑했다고 그러요?" 변씨의 분통은 그 시점에서 최고조에 이르고 말았다.

배말자씨가 욕바가지 뒤집어 쓰는 것을 감내하고 조용히 있었다면, 적어도 그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배말자씨도 뭔가 할 말이 없지 않았고 변명의 여지도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변씨의 무작스런 공격에 마냥 휘둘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반격할 말미를 찾으려 했음인데, 그 순간, 변씨의 주먹이 목덜미를 내려친 것이었다. 그러나 배말자씨도 뼈대만은 억센 여자였기에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단매에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심산으로 옹골차게 내려친 주먹에도 끄떡없이 버텼다는 것이 울분에 찬 변씨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는 가파른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고, 어물상자 틈바구니에서 기다란 몽둥이 하나를 뽑아 드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몽둥이를 집어 들고 공격태세를 취하는 순간까지도 배말자씨는 박힌 말뚝처럼 꼼짝 않고 변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갈데까지 가자는 심산이 그녀의 눈빛에도 분명했다. 주제꼴에 배알은 있어서 몽둥이까지 집어 드는 변씨가, 위험이 닥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하찮고 가소롭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몽둥이가 자신의 등줄기를 내려치기 전에 선제공격을 감행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자세를 낮추는 척하면서 변씨의 비역살을 힘껏 물고 비틀어 버렸다.

창자가 뒤집히는 고통이 식도를 타고 오르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변씨의 분풀이는 시작되었다. 내려쳐도 내려쳐도 여한이 풀리지 않는 매몰찬 매질이었다. 뼈대 억센 그녀도 등줄기와 옆구리에 가격을 당할 때마다 창자를 긁어 올리는 듯한 아우성을 내질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부근을 지나는 행인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내지르는 아우성과 매질의 강도는 비례하였다.

언제쯤 되었을가. 스스로 지겨울 정도로 사매질을 내렸으니까 상당한 시간이 흘러갔다고 생각되었다. 아무런 저항도 단념한 채 발 아래 늘어져 누운 여자가 갑자기 시선에 들어왔고, 자신의 몸뚱이도 땀으로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