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에 묻는다]4,여성의 시대는 열릴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인 (吾人) 의 자매 (姉妹) 되는 청년 (靑年) 여자 (女子)에게 고 (告) 하노라. 제군 (諸君) 은 규방 (閨房) 을 출 (出) 하여 태양 (太陽)에 면 (面) 하여 입 (立) 하라. " 개화파 지식인 남성이 20세기초에 한 말이다.

달이나 바라보며 답답하게 사는 규방 여자들을 향해 근대적 국민으로 새롭게 태어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런 권유의 말이 오간 지 1세기가 채 되지 않은 지금 이 땅에서는 남자 기살리기 운동이 일고 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정말 여자의 시대는 오고 있는가.

21세기는 분명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중세적 봉건사회를 무너뜨린 것은 상인과 장인과 무사로 이루어진 젊은 남성 집단이었다.

개혁적 성향의 주변부 남자들이 봉건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개혁 세력은 만인에게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유토피아를 만들어내겠다고 하면서 야심차게 '근대' 라는 새 시대를 기획했는데, 그 이후 3~4세기가 지나서 많은 이들은 그 '근대 기획' 은 실패한 기획이라고 말한다.

이제 위기에 처한 '근대' 는 서둘러 '진보' 의 신화를 접고 수혈을 받아야 할 판이다.

탈근대와 대안적 근대성과 여성성에 대한 담론은 바로 이런 위기상황에서 일고 있는 논의들이다.

근대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눈다면, 전반부는 봉건적 남성성을 넘어서는 근대적 남성성의 시기고 후반부는 근대적 남성성을 넘어서는 여성성의 시기라 할 수 있다.

근대의 전반부에 이루어졌던 작업은 봉건적 체제에 길들여진 수동적인 남자들을 근대적 국민으로, 그리고 거대한 시장의 수요.공급에 맞는 노동자로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간혹 남자들의 힘으로 모자라면 여자들을 끌어다 쓰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근대의 전반부는 남자들의 주무대였다.

이 시대를 통해 '숙녀' 인 여자는 새롭게 태어나 근대적 남성인 '신사' 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지 주체는 아니었다.

여자가 본격적으로 근대라는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근대 기획의 실패가 드러나기 시작할 즈음이다.

근대 기획은 이론가들이 꿈꾸던 것과 달리 인간이 서로를 도구화하는 시대를 낳았고, 표 관리에만 열을 올리는 무책임한 정치꾼들과 돈 벌기에 급급한 거간꾼들이 득세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지구 환경은 심하게 오염되었고, 복제 인간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지구 전체를 한 순간에 파괴할 핵무기가 만들어졌다.

한편에서는 원자화한 개인들이 외롭다고 아우성을 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 지구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자본' 이 그 자체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치 운전기사 없는 거대한 자동차처럼 가속도가 붙어 질주하고 있는 이 체제는 금융자본의 대부인 조지 소로스 자신이 예언했듯 위험하기 짝이 없는 체제다.

향방을 조절할 길이 없는 이러한 역사적 진행이 이를 곳은 파국뿐이다.

위기를 돌파하는 에너지는 사회 중심부가 아니라 주변부에서 나온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법칙이다.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대안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당연한 귀결이다.

20세기가 경쟁과 소유와 독점의 원리가 주도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공생과 자율과 공유의 원리가 주도하는 시대일 것이다.

도구적 합리성과 확장주의에 의해 굴절된 근대를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공존주의로 바로잡아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기력이 쇠잔하여 도덕성마저 잃은 현 체제는 주변에서 영입한 여자들의 힘을 빌려 겨우 지탱해나가고 있다.

여유만만한 미소를 짓는 힐러리라는 여자가 클린턴이라는 남자를 '보호하고 구제하듯' 말이다.

21세기를 잘 살아낼 나라는 한마디로 여성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열어 가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면 한국이라는 사회는 어떤가.

한국 사회는 세계적으로 남녀 평등 지표가 매우 낮은 나라에 속한다.

한국 사회가 남다르게 남성성에 집착하는 것은 식민지적 근대화 경험과 관련이 깊다.

팽창주의 시대에 제국 남자들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자신들의 남성성을 확인해갔다면, 식민지 땅의 남자들은 자국내 여성을 식민화함으로써 자신의 상한 남성성을 지켜나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초고속 성장은 손상된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열망의 소산인 측면이 없지 않다.

한국 사회가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그것은 왜곡된 남성성의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가능하다.

남자들이 기형적 근대화 과정에서 굳어진 남성 콤플렉스에서 해방돼 자신들이 만들어낸 체제를 성찰해낼 수 있다면, 자신의 불안한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명분과 당위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면, 그래서 연줄로 이어지는 부패의 먹이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여자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관료제적 공공성을 넘어 시민적 공공성을 세우기, 관계의 회복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기, 격변의 시대를 유연하게 살아남기, 이런 것은 여성성을 포용하지 않고서는 해낼 수 없는 작업들이다.

솔직히 인류의 미래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여성의 시대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

지구는 멸망할 지 모르며, 그 때 우리는 옛 소련의 영화감독 타르코프스키가 만든 '희생' 의 주인공처럼 죽은 나무에 물을 주면서 그저 인류의 소멸이 덜 끔찍하고, 덜 고통스럽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

인류가 근대 기획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데 성공한다고 치자. 그 때는 근대 초기가 그랬듯이 다시 한번 세계 질서의 재편성이 일어날 것이다.

어떤 사회는 살아남을 것이고, 어떤 사회는 '먹혀버리고' 말 것이다.

하드웨어만 있고 소프트웨어는 없는, 기술만 있고 의사소통이 없는, 소외된 이론만 있고 경험적 지식은 없는 체제로 그 시대를 살아남기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실학과 동학의 후예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오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정말이지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새해에는 각자 자신 속에 있는 여성성을 살려내 삶의 '차원' 을 한 단계 높여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남자와 여자가 생산적인 시대를 열어가는 동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인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