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전 노장’바리첼로 F1 인간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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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 말처럼 사람들은 미하엘 슈마허(39)는 알아도 루벤스 바리첼로(37·브라운GP·사진)는 잘 모른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의 ‘위대한 2인자’ 루벤스 바리첼로. 그가 24일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열린 F1 유로 그랑프리(GP)에서 루이스 해밀턴을 2초 차로 제치고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2004년 중국 GP 이후 5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그는 거의 울 것처럼 기뻐했다. 지긋지긋한 2인자의 꼬리표를 올해는 떼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슈마허의 그림자=바리첼로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페라리 머신을 탔다. 한 팀에 두 대씩 대회에 출전하는 F1에서 그의 역할은 슈마허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였다. 2002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에서는 경기 막판 팀의 지시로 슈마허에게 추월을 허용하며 1위를 양보했다. 슈마허는 시상대 1위 자리에 바리첼로가 오르게 했다. 그 때문에 둘은 징계를 당했고 국제자동차연맹은 이듬해부터 ‘팀 오더’를 금지했다. ‘특급 도우미’ 바리첼로와 함께하는 동안 슈마허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내리 5년 연속 F1 시즌 챔피언에 등극했다.

슈마허를 위해 희생만 했던 그는 “공정한 경쟁을 하고 싶다”며 2006년 혼다로 팀을 옮겼다. 하지만 페라리라는 특급 머신을 떠나자 그의 성적도 바닥을 기었다. 2007년에는 7위 내 입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난해에는 20명의 드라이버 중 14위에 그쳤다.

◆극적인 재기와 마지막 도전=지난해 말에는 혼다가 F1에서 철수했다. 신생팀 브라운GP가 아니었다면 내리막길을 걷던 그의 레이스 인생은 지난해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레이스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만 브라운GP는 이번 시즌 누구도 예상 못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바리첼로는 올 시즌 준우승만 세 번 한 데 이어 이번 유로 GP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시즌 종합 2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같은 팀 동료인 젠슨 버튼이다. 둘의 점수 차는 18점이다. 우승을 하면 10점이 주어지기에 충분히 역전할 수 있다.

통산 최다승(91승), 통산 최다 챔피언(7회), 통산 최다 포인트(1369점) 등 F1의 웬만한 기록은 슈마허가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나 통산 최다 출전은 바리첼로의 것이다. 모두 282회로 슈마허보다 32회나 더 F1에 출전한 백전노장이다. 그의 마지막 꿈은 시즌 종합 챔피언이다. 소속팀 브라운GP가 자신보다 젠슨 버튼을 더 챙긴다고 의심하고 있는 그는 유로 GP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이제부터 우리 사이의 경쟁은 공정해질 것”이라며 강한 집념을 보였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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