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육상 이대론 안 된다 <2> 잇속만 따지는 지도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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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간 지구촌을 달궜던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24일(한국시간)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미국이 금메달 10개로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우사인 볼트를 앞세운 자메이카가 금 7개 로 2위에 올랐다. 폐막식에서 참가자들이 ‘2011년 대구에서 만납시다’라는 현수막 앞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 [베를린 AP=연합뉴스]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둔 이달 초.

오스트리아에서 전지훈련을 지휘하던 대표팀 코치 한 명이 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귀국했다. 개인적인 업무 때문이었다. 그가 지도하던 선수는 코치 없이 13일 베를린에 들어갔고, 저조한 기록으로 예선 탈락했다. 대표팀의 한 코치는 몇 해 전 태릉선수촌을 빠져 나와 주중 골프를 즐기다 발각돼 교체되기도 했다.

한국 육상은 24일(한국시간) 베를린에서 폐막된 제12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원 예선 탈락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그 이면에는 선수들의 나약한 정신력도 문제지만 지도자들의 무책임과 이기주의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코치가 뭘 안다고=한국 육상은 최근 몇 년 새 여러 명의 외국인 코치를 초빙했다. 그러나 대부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갔다. 해당 선수의 소속팀 지도자가 “지도법이 우리와 맞지 않는다” “선수가 몸이 아프다” "학교 수업을 들어야 한다” 는 등의 이유를 대며 선수를 자꾸 불러냈기 때문이다. 단거리 종목의 경우 일본인 코치가 선수촌에 대표선수를 모아 놓고 가르치려 했으나 소속팀에서 “따로 훈련하는 게 효율적”이라며 응하지 않아 무산되기도 했다. 외국인 코치에게서 지도받은 선수들의 기록이 크게 향상될 경우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명 선수 출신의 한 대표팀 코치는 육상연맹이 초빙한 일본인 코치에게 “내가 현역 시절 당신보다 더 잘 달렸다. 당신의 지도법은 한국 선수에게는 맞지 않는다”며 모멸감을 주기도 했다. 신필렬 육상연맹 명예회장은 “지도자들이 선수를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선수들이 따라오는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밥그릇’만 챙기는 모습을 보고 뭘 배우겠느냐”고 한탄했다.

◆지도자끼리도 헐뜯기가 다반사=지난해 12월 마라톤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침체된 한국 마라톤을 다시 일으킬 방법을 찾자며 육상연맹이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발전적인 이야기는 잠시 나왔을 뿐 이내 연맹의 성토장이 돼 버렸다. 너나 할 것 없이 연맹을 탓하더니 금세 지도자끼리 서로 언성을 높였다. 육상 47개 세부 종목 지도자들로부터 47가지 서로 다른 요구사항이 쏟아져 나오니 육상연맹도 죽을 맛이다. 연맹 전무이사를 역임한 황규훈 건국대 감독은 “개인종목들이라 그런지 지도자 간 팀워크나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것 같다. 항상 나와 내 팀만 앞세우니 집행부가 연맹을 끌고 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단거리나 필드 종목 지도자들은 장거리 종목을, 장거리 종목은 필드 종목을 서로 비난하는 등 반목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기력한 연맹=그럼에도 이 같은 갈등을 조정해야 할 육상연맹은 일선 지도자들의 눈치만 보는 허약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심을 잡고 끌고 나갈 리더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집행부 인사끼리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남녀 마라톤 역시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마라톤은 1990년을 전후해 세계 정상권이었던 효자 종목. 이를 두고 남상남 연맹 전무가 “지난 5월부터 생모리츠(스위스) 전지훈련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고 비판하자 이종찬 마라톤기술위원장은 “그걸 알았으면 그때는 왜 지적하지 않고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맞받아쳤다.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간부들 사이에 책임 공방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 1월 취임한 오동진 연맹 회장은 이번 대회 참패 뒤 현 시스템에 개혁의 칼을 대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육상인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베를린=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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