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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장점지키는 구조조정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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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한햇동안 우리경제는 국민총생산 (GNP) 의 10%가 넘는 대폭적인 경상수지흑자를 이뤄냈다.

한해만에 경상수지적자에서 이렇게 대폭적인 흑자로 돌아선 것은 외환위기를 맞았던 나라들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 결과 우리 경제는 이제 다소의 숨쉴 공간을 갖게 됐다.

지난 한햇 동안은 외환위기라는 폭풍우 속에서 배에 차들어오는 물을 퍼내고 난파를 면하기 위해 항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고, 또 우리가 이 모든 구조조정과 대량실업.국민의 고통을 통해 과연 이뤄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혼동을 초래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차분히, 그리고 진지하게 21세기의 우리 경제가 서고자 하는 목표와 비전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전략적 사고를 갖고 항로를 설정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 우선 우리경제가 지금 서 있는 지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첫째, 우리는 지난 수년간 선진국 흉내를 냈으나 실제로 우리의 제도 및 질서.기술력은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크게 뒤져 있는 상태다.

시장은 개인이나 국가나 분에 넘치는 경제행위를 하도록 오랫동안 용납하지 않으며 그 결과가 외환위기였다.

이제 우리의 1인당 소득이 세계 40위 수준으로 내려왔는데 지금의 환율이 적정수준이라고 본다면 거품이 빠진 우리 경제의 실제 모습은 현수준이 오히려 맞는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가 이룩한 지난 30년간의 고도성장과 그토록 짧은 기간에 어느 나라도 해내기 힘들었던 산업고도화를 이뤄 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 경제에 저력이 있었다는 것과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제도와 구조에도 남다른 장점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셋째, 세계사를 되돌아볼 때 어느나라든 국가지위 상승은 반드시 그 나라 내부의 각고 (刻苦) 의 노력과 주변국가들과의 갈등을 통해 이뤄져 왔다.

강자는 항상 떠오르는 경쟁자를 견제하고 무력화하려 하며 후발경쟁국의 지위상승은 언제나 비전과 전략적 혁신, 그리고 때로는 도전적인 확대전략을 통해 이뤄졌다.

넷째, 오늘날의 전자통신혁명은 그야말로 세계를 지구촌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

세계시장의 급속한 통합과 더불어 시장경쟁의 질서와 법칙 또한 결국 주로 영.미식 질서와 제도로 통합돼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섯째, 냉전시대의 종식과 더불어 안보를 축으로 하는 우방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이는 지난 30년간 우리경제의 고도성장에 큰 배경이 돼 온 보호막이 제거됐으며 우리는 이제 스스로의 안전망을 구축하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같이 작고 개방된 경제에 요구되는 것은 첫째, 당분간 경상수지흑자의 지속과 외환보유액 확대를 통한 외환시장의 안정망 강화며 둘째, 이미 기업부문에서 크게 초래된 손실을 국민에게 합리적으로 분담시킴과 동시에 가능한 한 지난 수년간 확대시켜 온 산업기반을 지켜나가는 것이며 셋째, 우리 제도와 시장질서를 국제적 규범에 맞게 개편해 나감과 동시에 우리 경제의 저력과 장점을 지켜 앞으로도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을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올 한해의 경제정책기조도 국민이 실질소득의 감소를 조금 더 참고 경상수지흑자를 지속하며 동시에 금리의 하향안정화를 통해 추가적인 부실을 막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금리안정을 저해할 수 있는 외환규제 완전철폐나 수입확대를 가져올 경기회복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조성은 이런 면에서 꼭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개방의 방식과 기업구조조정에 있어서도 계열기업의 해외매각과 사업교환이 우선돼야 하는 목표인지 아니면 대폭적인 부채 출자전환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시키고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해 재벌이 족벌경영체제를 벗어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우선돼야 하는 목표인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가장 큰 부가가치는 상표명.기업명에서 나오므로 세계시장에서 재벌이 이미 쌓아올린 기업명.상표명을 지키고 내부시장의 장점을 살리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개방과 제도의 혁신은 필수적인 것이나 동시에 모든 것을 미국이나 선진제국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장점을 살리고 빠른 상대적 지위상승을 도모하기 위한 최선의 방식은 아닐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아직도 중진국으로서 앞으로 상당기간 고도성장을 지속해 나가야 할 처지며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전략적 사고와 비전을 바탕으로 한 개방과 제도개혁을 추진해야 할 때다.

조윤제 서강대 경제학 교수

◇ 필자 약력

▷47세▷서울대상대졸.미 스탠퍼드대 경제학박사▷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 근무▷조세연구원부원장▷부총리자문관▷서강대 국제대학원교수.국제지역연구원장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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