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 과다 섭취도 지방간의 원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지방간이 있으시네요.”

남성 직장인들이 건강검진을 하면 흔히 듣는 말 중 하나다. 대한간학회가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은 성인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습적으로 음주하는 사람의 50% 정도에서 지방간이 있으며,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최근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나 젊은 연령대에서도 지방간은 늘고 있다. 지방간은 그냥 방치하면 심각한 간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그런데도 “매번 듣는 소리”라며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술이나 고기를 즐기는 스타일도 아닌데 웬 지방간이냐”며 따지듯 묻는 이들도 있다.

지방간이란 말 그대로 간세포 내에 지방질, 특히 중성지방이 많이 쌓여 있는 상태다. 체내에서 지방을 지나치게 많이 만들거나 지방을 간 밖으로 적절히 방출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간세포 내에 지방이 과다하게 쌓여 있으면 간세포의 기능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우리 몸의 가장 큰 장기인 간은 실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지방 소화에 필요한 담즙을 만들며, 술과 약물의 해독작용을 하고 쉽게 배설될 수 있게 만든다. 각종 영양소들이 간에서 대사되고 저장된다. 알부민이나 면역물질, 혈액응고인자 등 신체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도 간에서 만들어진다.

콩은 간에 지방 쌓이는 것 막아
간이 나쁘다고 해도 식이요법은 원인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단순히 간세포에 지방이 쌓여 있을 때는 그 원인만 바로잡아 주면 곧 상태가 개선된다. 지방간은 원인에 따라 크게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지방간과 비만·당뇨병·고지혈증·약물 등으로 인한 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알코올은 간 내에서 지방 합성을 촉진시킨다. 따라서 알코올성 지방간이 있다면 술을 끊는 것이 최우선이다. 소량씩이라도 자주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을 때 역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또 알코올 중독처럼 만성적으로 술을 많이 마셔온 경우라면 적절한 식사를 하지 못해 영양결핍 상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상적인 식사 습관을 갖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최근엔 비알코올성 지방간인 사람도 적지 않다. 전통적으로 간질환의 식사요법으로는 ‘잘 먹고 충분히 쉬는 것’이 많이 권장돼 왔다. 하지만 비만·당뇨병·고지혈증 등과 관련된 비알코올성 지방간 환자라면 이런 방법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할 수 있다. 칼로리를 과다하게 섭취하면 남은 에너지가 결국 체내에서 지방의 형태로 전환되고, 이는 간세포 내에 지방이 쌓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이럴 땐 식사량을 줄이고 적절한 운동을 해서 혈당과 혈액 내 지질 수치가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술이나 고기, 기름진 음식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도 지방간이 있다면 탄수화물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점검해 본다.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도 간에서의 중성지방 합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밥·빵·국수·떡·감자·고구마·과자·케이크·설탕·시럽·꿀 등 탄수화물이 많이 포함된 음식의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탄수화물 음식을 지나치게 제한하면 지방이나 단백질 섭취가 과다해질 수 있다. 단백질 음식에는 대부분 지방이 같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살코기·생선·콩 등 동물성 지방이 적은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특히 콩에는 레시틴·콜린 등 항지방간인자(간의 지방침착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물질)도 풍부하게 포함돼 있다.

황달 동반한 간염 땐 기름진 음식 금물
간염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간 질환의 하나다. 원인은 바이러스·알코올·약물 등 다양하다. 급성간염 초기에는 식욕이 없고, 구토나 메스꺼움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증상이 흔히 동반된다. 증상이 심할 때에는 신선한 과즙이나 맑은 국물, 차와 기타 음료를 이용해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은데, 이때 탄수화물 함유 식품은 식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차츰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단백질·지방·비타민·무기질도 적절히 공급해 간세포가 재생되도록 해준다.

간염 환자에겐 흔히 고단백 식사가 강조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단백질 음식에는 대부분 지방이 같이 들어 있기 때문에 지나친 고단백 식사는 해로울 수 있다. 너무 잘 먹어서 체중과다, 혹은 비만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또 지방을 특별히 피할 필요는 없지만, 기름기 있는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다. 단, 황달이 함께 나타날 때는 지방 소화가 어려우므로 튀김과 같은 기름진 음식을 절대적으로 피해야 한다. 술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편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A형 간염은 바이러스에 오염된 식기나 음식물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 따라서 식기류 소독과 남은 음식물 처리에 특히 유의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한다.

간염이 만성화되면서 간경변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 간경변증은 염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간 조직이 섬유화되는 질환이다. 간경변증이 있을 때의 일반적인 식이요법은 간염과 비슷하다. 그러나 붓거나 배에 물이 차는 증상(복수)이 있다면 염분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 또 식도정맥류가 동반될 때는 딱딱한 음식물, 끈적해 목에 달라붙기 쉬운 음식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를 위해 음식물을 조리할 때는 작은 크기로 잘라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들고, 생선 가시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일부 간 질환 환자들이 민간요법이나 건강보조식품 등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때가 있다. 이는 오히려 간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김은미 대한영양사협회 홍보위원 강북삼성병원 영양실 실장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