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 누구와도 알게 된다면서요?”“허브 역할 하는 사람 덕분 ...몸속에도 그런 단백질 있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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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08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시작한 BBC의 ‘무경계5’(경계를 허문 과학서 5선) 프로그램이 오늘 두 번째 시간을 맞았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헝가리 태생의 이론 물리학자 바라바시 교수가 쓴 『링크』다. 사실 이 책은 시청자 투표에서 10위에도 오르지 못했지만 다윈이 너무나 강력하게 추천하는 통에 제작진의 마음이 흔들렸다. 저서가 달랑 한 권뿐이고 이제 겨우 불혹을 넘긴 저자를 다윈의 서재에 초대하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21세기 다윈의 서재<13>-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의 『링크』

다윈=반갑습니다. 바라바시 선생. 역대 초대 손님 중에서 최연소 기록입니다.
바라바시=정말로 절 초대하신 건가요? 여기는 대가들만 오시는 줄 알았습니다.

다윈=여기가 노인정은 아니랍니다. 하하. 난 사실 젊은 학자들과 대화하는 게 더 좋고 편해요.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울 수 있거든. 그런데 선생을 여기 초대한 이유는 아시는지.

바라바시=글쎄요. ‘경계를 허문 과학서’를 소개한다고 들었습니다. 『링크』에서 제가 물리학·생물학·경제학·사회학의 중요한 현상들을 네트워크 과학으로 풀어냈기 때문인가요?

다윈=물론 그게 공식적인 이유이긴 한데, 내가 궁금한 게 있었어요. 난 남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죠. 울렁증이 좀 있어요.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고 지인들에게 편지 쓰는 일들은 즐겁답니다. 반면 탁월한 과학자인 내 친구 토머스 헉슬리는 성격이 완전 반대죠. 문자 그대로 공개 논쟁을 즐기는 타입이죠. 그런데 후대 사람들은 외향적이고 호탕한 헉슬리보다 내향적이고 편집증에 시달렸던 나를 더 기억해 주는 것 같거든요.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니 민망스럽긴 하지만 이건 사실이에요. 늘 그 이유가 궁금했어요.

바라바시=두 분 다 뛰어난 과학자요 사상가였지만 선생님은 당시 과학자 공동체의 강력한 ‘허브’였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의 연결점 말입니다.

다윈=허브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줄 수 있겠소?

바라바시=제 책의 논리대로라면 선생님은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 네트워크에서 “주변의 점들과 비정상적으로 많이 링크된 점”, 즉 허브입니다. 제가 어딘가에서 보니 선생님은 평생 동안 거의 2000명의 사람과 수만 통의 편지를 교환하셨다더군요. 얼른 계산해 보면 하루에 한두 통은 쓰셨다는 얘긴데요, e-메일도 없던 시대에 그리 하셨으니 요즘으로 치면 선생님은 틀림없이 ‘파워 네트워커’ 또는 ‘파워 블로거’랄 수 있을 거예요.

다윈=아이고, 내 얘길 괜히 꺼냈소이다. 미안합니다. 본론으로 갑시다. 우선, 몇 가지 중요한 키워드부터 짚고 넘어가 봅시다. 선생이 표방하고 있는 ‘네트워크 과학’이란 게 뭡니까?

바라바시=그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복잡계’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복잡계’란 그 안의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서로 간의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그런 시스템을 말합니다. 생명체, 인간 사회, 인터넷 등이 대표적인 복잡계죠.
‘네트워크 과학’이란 이런 복잡계의 구성 요소들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점과 선으로 단순화시켜 네트워크로 바꿔 연구하는 방법론입니다. 가령 네트워크 과학에서 사회는 점(사람)과 선(서로 간의 관계)으로 이뤄진 인맥입니다.

다윈=인맥 얘기 잘 꺼냈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도 6단계만 건너면 다 연결된다면서요? 전 세계 인구가 60억이 넘는데 그게 정말 사실인지가 믿기지 않아요.

바라바시=그건 제 연구는 아니지만 예컨대 이런 거예요. 전혀 모르는 뉴욕의 아무개에게 편지가 전달되도록 할 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가를 평균적으로 따져 보는 거죠. 그랬더니 대략 다섯 사람의 손만 거치면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이 얼마나 좁은 세상입니까? 그런 세상은 또 있습니다. 제 연구팀은 현재 존재하는 웹페이지(10억 개로 추정)에 다 도달하기 위해 대체 몇 번의 클릭이 필요한지를 계산해 보았지요. 어느 정도일까요? 놀라지 마세요. 겨우 19번이면 세상의 모든 웹페이지를 다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윈=정말 놀랍군. 인터넷 세상이 그렇게 좁은가요?

바라바시=저희도 의심스러웠죠.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이 뒤에 기다리고 있었어요. 웹이 서로 무작위로 네트워킹돼 있지 않다는 사실 말입니다. 대신, 허브 기능을 하는 웹페이지가 적잖이 있었습니다. 얘네들 때문에 클릭 수가 확 줄어든 거죠. 유식하게 말하면, 허브가 많은 네트워크는 ‘멱함수 분포’를 따르는 ‘척도 없는 네트워크’입니다.

다윈=그게 뭔 소리요. 좀 쉬운 예로 설명해 주시오.

바라바시=자, 여기 보세요. 고속도로 지도와 항공노선 지도가 있지요. 고속도로 지도의 경우 각 도시(점)는 대개 비슷한 수의 고속도로(선)에 연결되어 있어요. 반면 항공노선 지도의 경우는 수많은 항공편을 가진 몇 개의 허브 공항과 수백 개의 작은 공항이 네트워크를 이루게 됩니다. 항공노선이 바로 척도 없는 네트워크인 셈입니다.

다윈=그러니까 허브가 있는 복잡계가 따로 있다는 얘기네요. 미국의 허브인 뉴욕에서 일어난 9·11테러가 왜 미국 사회를 엄청난 충격에 빠뜨렸는지가 이해되네요.

바라바시=그렇습니다. 한데 그런 네트워크가 생체 내에도 있습니다. 몸속의 수많은 단백질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만 중심이 되는 몇 개만이 허브 역할을 하죠. 국가 간 무역도 마찬가지예요. 몇몇 선진국이 상호작용을 주도합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증권시장에도 몇몇 우량주가 증시를 주도하죠. 그 대상이 어떻든 복잡한 네트워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이런 흥미로운 원리들이 발견된답니다.

다윈=그래서 내가 선생의 『링크』를 무경계라 부르는 거잖소. 우리 재미로 이런 거 한번 해봅시다. 구글(google)에 각자 이름을 친 뒤에 연결된 링크 수를 서로 비교해 봅시다. 더 많이 나오는 사람에게 오늘 저녁 한턱 내는 것 어때요? 하하.
※다음 번 ‘무경계5’에서는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를 소개합니다.


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의 역사와 철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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