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주로서 더 빠른 볼트 … 따라잡을 자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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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m에서도 우승한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에 대한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볼트는 100m에 이어 200m에서도 압도적인 레이스를 펼치며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약점으로 꼽히던 느린 출발 반응 속도도 상당히 보완한 모습이다. 큰 키(196㎝) 때문에 곡선주로에서 보이던 상체의 흔들림도 사라졌다. 완벽한 스프린터로 진화한 볼트를 깨기 위해서는 2m대의 근육질 거한이 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볼트가 어떻게 강한지 분석했다.

100, 200m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한 우사인 볼트左에 대해 영국 BBC는 “무시무시하다. 인간 한계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사진은 200m 결승에서 볼트가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여유 있게 골인하는 장면. [베를린 로이터=연합뉴스]

◆곡선주로에서 더 강했다=장신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곡선주로에 약하다. 무게중심이 위에 있어 상체가 흔들리기 쉬운 데다 체중으로 인한 원심력 때문에 코너를 돌 때 몸이 바깥쪽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트는 예외였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200m 결승전을 50m 단위로 쪼개 분석한 결과 볼트는 직선주로보다 오히려 곡선주로에서 더 빨랐다. 그는 곡선주로인 50∼100m 구간을 초속 11m57의 속도로 4초32에 통과했다. 4개 구간 중 가장 빠른 스피드였다. 후반의 가속력도 여전했다. 볼트는 100∼200m 구간을 9초27로 끊으며 다른 선수들의 추격 의지를 간단히 잠재웠다. 현장에서 만난 일본 육상 남자 100m 기록 보유자(10초00) 이토 고지는 “베이징올림픽 때만 해도 볼트는 레인 바깥쪽을 힘겹게 돌았다. 하지만 베를린에서는 원심력을 이겨내고 레인 안쪽에서 완벽하게 레이스를 펼쳤다”며 “상반신과 허리둘레 근육이 늘어 곡선을 이겨낼 힘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더 빨라진 출발 반응 속도=볼트의 출발은 100m 결승 때보다 더 놀라웠다. 0.133초의 반응속도를 보여 결승에 오른 8명 중 가장 빨랐다. 17일 100m 결승 때(0.146초)보다도 0.013초를 더 단축한 것이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직전 한 인터뷰에서 “자세를 교정하는 데 힘썼다. 출발이 늦다는 것은 옛말”이라고 했던 볼트의 큰소리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200m 우승을 차지한 후 “스타트가 좋았고 이것이 좋은 기록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볼트는 최고 순간속도가 초속 12.27m에 이르는 가속력이 최대 무기다. 짧은 시간에 피로를 견디는 무산소 지구력과 허벅지의 힘에서 나오는 스피드 지구력(스피드를 연속적으로 지속해 주는 힘) 역시 최고다. 마지막 약점으로 꼽히던 반응속도까지 보완한 볼트의 100m·200m 신기록행진은 마침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인간 한계를 새로 쓴다=영국의 BBC는 볼트의 무한 질주를 ‘무시무시하다(awesome)’고 표현하며 “볼트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한 과학자가 예상한 인간의 100m 속도 한계치는 9초48이었지만 볼트로 인해 9초3대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중거리 선수 출신인 이진일 대한육상경기연맹 훈련지원팀장은 “현재로서는 지구상에서 볼트를 이길 수 있는 선수는 없는 것 같다”며 “농담이지만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볼트와 함께 200m 결승에 나섰던 숀 크로퍼드(미국)는 “레이스를 펼치는 내내 내가 게임기 속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베를린=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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