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거북선의 신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임진란때 일본군의 주력이 부산에 상륙한 것은 1592년 4월 14일에서 19일 사이였다.

서울 도착은 5월 2일이었다.

10여일 사이에 대부대가 천리길을 행군했다는 것은 도중에 전투로 지체된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두 나라 군대의 전투력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5월 들어 바다에서는 전연 다른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경상도 수군은 개전초 금방 궤멸됐는데, 이순신 (李舜臣) 의 전라도 수군이 나서면서 일거에 제해권을 장악한 것이다.

넉 달 동안 이순신의 함대는 네 차례 출동으로 혁혁한 전과를 거두고 일본 수군을 무력화시켰다.

이듬해초 명나라 주력부대가 참전할 때까지 조선이 명맥을 유지한 것은 이순신과 수군의 공로였다.

해전의 거듭된 쾌승은 같은 시기 육전의 처참한 패배와 대조를 이루며 이순신의 신화를 낳았다.

이순신이 만들어 해전에 이용한 거북선도 또 하나 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신화에는 수수께끼가 따르게 마련이다.

이순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심심찮게 이설 (異說) 이 제기되고 있거니와, 거북선의 모습도 안개에 싸여 있어 '잠수함' 이라느니 '쾌속정' 이라느니 하는 엉뚱한 설이 오랫동안 파다했다.

거북선의 원모습을 되찾는 데는 조선공학자 김재근 (金在槿) 박사의 수십년 연구가 큰 몫을 했다.

그는 임진란 수십년 전부터 주력 전선 (戰船) 으로 개발된 판옥선 (板屋船) 의 기능에 주목하고 이를 거북선의 원형으로 봤다.

판옥선은 선체 위에 판잣집을 올린 모양인데, 전투원과 화포는 옥상, 즉 윗갑판 위에 배치되고 노꾼들은 판잣집 안에서 노를 젓게 한 것이다.

화포의 위치를 높여 위력을 증가시키고 노꾼을 격리시켜 기동력을 보호한 이 배가 해전의 주역이었다.

거북선은 윗갑판 대신 튼튼한 지붕을 거북등처럼 씌운 것이었다.

전투원을 지붕 밑에 끌어들였기 때문에 조총 (鳥銃) 공격에 강한 대신 전투원과 노꾼이 같은 평면 위에 뒤섞여 동작이 불편하다는 점에서는 일반 판옥선보다 불리했다.

소화기 (小火器) 로만 무장한 적함대에 돌격하기에 좋다는 점에서 특정한 양상의 해전에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거북선의 규격에 관한 자료로 활용된 것은 임진란 후 2백년이 지난 1795년에 간행된 귀선도설 (龜船圖說) 이다.

그 편찬자들도 원래의 규격이 전해지지 않아 추정할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임진란 당시의 자료가 나타나 관심있는 학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8순을 눈앞에 둔 김재근 박사도 흥미롭게 검토를 시작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