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젊음 ⑥ ‘실제 상황 즉흥 프로젝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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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좋을 듯한 관객을 찾아 무대에 세운다”는 이들은 “넥타이 정장 차림의 남성 관객은 가능하면 피한다”고 말한다. 왼쪽부터 욕고·백호울·강공지. [최승식 기자]

무대에 있던 여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는 순간, 여자는 아예 객석으로 내려와 내게로 다가온다.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얼굴까지 부벼댄다. 한명이 아니다. 또 다른 한명의 여성이 쫓아와 이를 그대로 흉내낸다. 급기야 사진작가까지 우리의 이런 어색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 그건 또 스크린에 그대로 비춰진다.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깔깔거리는 소리, ‘내가 동물원 원숭이인가?’

29일과 30일 서울 마포구 신정동 CJ아지트에서 선보일 ‘실제 상황 즉흥 프로젝트’의 한 모습이다.

당신이 객석 구석에서 작품을 음미하고자 하는 이라면, 이 작품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을 듯싶다. 반면 ‘나도 언제 한번 무대에 서 봤으면…’하는 숨은 끼를 가진 이라면 강추다. 어느 순간 무대 가운데에 선 자신의 모습에 당신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랄지도 모르니.

이 엉뚱한 프로젝트의 멤버는 3명이다. 백호울(28)과 강공지(25)는 무용수이며, 욕고(33·본명 한승연)는 사진작가다. 이들의 주무기는 ‘즉흥성’이다. 2007년 봄 서울 광화문 KT빌딩 앞 거리에서의 공연이 데뷔 무대였다. 테마는 ‘외줄’이었고, 웅크리고 누운 모습에서 공연은 시작됐다. 멀쩡한 대낮에, 그것도 수많은 행인이 오가는 인도에 몇 명이 누워있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모였다.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누가 다쳤다면서.” 강공지씨의 회상이다. 그래도 어찌하나, 명색이 공연이고 이미 막은 올랐는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대한 적응력이 쌓여가면서 내공도 깊어졌다”는 게 욕고씨의 설명이다.

이후 이들의 길거리 즉흥 공연은 서울 곳곳에서 게릴라처럼 진행됐다. 연극의 메카 대학로도 있었고, 문래동 공장 지대도 있었다. ‘즉흥’적으로 한다고 아무런 준비가 없는 건 아니다. 이들은 매주 최소 1회 이상 모여 작품의 구상과 컨셉에 대해 난상토론하며, 동작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즉흥의 강점은 가장 자연스런 움직임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준비된’ 즉흥일 때 더욱 빛난다”는 게 이들의 철학이다.

관객과의 ‘소통’ 역시 이 프로젝트의 특징이다.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누구나 설 수 있는 게 무대”라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백호울씨는 “홍대 앞 거리 공연땐 60명 정도 구경하더니, 끝날때쯤엔 우리는 쏙 빠졌는데 그들이 더 신나게 거리를 누볐다”고 말한다.

최근 이들의 관심은 ‘통섭’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뮤지션·미술가·연극배우들과의 공동 작업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욕고가 찍은 사진을 현장에서 그대로 볼 수 있게 해, 동적인 움직임과 정지된 스틸 사진의 대비 효과를 극대화시킬 요량이다. 백호울씨의 마지막 한마디. “즉흥·소통·통섭 같은 어려운 말 필요 없구요, 그냥 무대 객석 구분없이 신나게 놀고 싶어요.”

글=최민우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실제 상황 즉흥 프로젝트’=29일 오후 6시, 30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신정동 CJ아지트. 홈페이지(www. cjazit.org)를 통해 신청해야 입장 가능함. 무료. 02-3272-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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