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스크린쿼터에 관한 단상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 영화 '하나 - 비' 가 썰렁하게 막을 내리고, '일본의 전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마저 죽을 쑬 때 어느 일본 신문 주한특파원의 반응이 재미있었다.

"오히려 잘됐다" 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극장에 관객이 들어차면 반사적으로 일본 영화 안보기 운동이라도 벌어지지 않겠느냐는 얘기였다.

물론 의외의 결과에 대한 견강부회적 해석이지만, 장차 들어올 일본 상업영화에 대한 은근한 자신감도 섞인 말이었다.

'카게무샤' 와 한 극장에 나란히 걸린 우리영화 '약속' 앞에 진을 친 관객들을 보며 우리영화의 힘을 과신할 수는 없겠지만 요 근년 우리영화가 내뿜는 기 (氣) 는 사실 괄목할 만한 것이다.

올해만 보더라도 서울에서 3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9편이나 되고, 장르도 로맨틱 코미디 일색에서 벗어나 공포.멜로.SF 등이 함께 한 다양한 메뉴였다.

특히 성공한 영화의 대부분이 신인감독들 작품이란 점에서 우리영화의 미래는 청신호라고 봐도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런 와중에 다시 불거진 스크린쿼터 논란은 앞으로 결론이 어떻게 나든 우울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얼굴을 찡그려도 예쁘다는 여배우들이 자신들의 영정을 손에 들고 거리로 나선 것도 그렇고, 여감독들의 삭발 모습은 처연하기까지 했다.

이들의 모습에 오버랩돼 떠오르는 세사람. 지금은 각종 시민단체들이 참여해 '스크린쿼터공동대책위' 로 기구가 확대돼 있으나 논란 초기에 영화인들이 구성한 비상대책위 대표로 괄호안에 함께 묶인 감독 임권택, 제작자 이태원, 배우이자 영화인협회 이사장인 김지미를 보면 영화인들의 공동체적 운명을 새삼 확인케 한다.

말많고 탈도 많기로는 정계 저리 가라는 영화계에서 특히 임권택과 이태원은 80년대 중반 이후 단짝을 맺고 (촬영감독 정일성을 더해 트리오를 이루었다) 많은 양질의 영화를 만들어 왔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서편제' '장군의 아들' '태백산맥' '축제' 등이 그런 것들이다.

이에 앞서 지난 84년 그들은 김지미와 함께 '비구니' 를 만들다가 불교계의 반대에 부닥쳐 김지미만 삭발한 채 제작을 덮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알려져있다시피 임권택은 60년대에서 70년대 중반까지 '돌아온 왼손잡이' 에서 '명동삼국지' 까지 마구잡이로 영화를 찍어댄 감독이었다.

그런 그가 대변신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지금은 졸속정책으로 평가받지만 그래도 당시 정부의 우리영화 진흥책 때문이었다.

70년대 정부는 대종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제작자에게 외화 한 편을 수입할 권리를 줬다.

외화 쿼터 한편의 프리미엄은 그때 돈으로 무려 3억원이었다.

이 돈에 끌려 임권택의 실력을 아는 제작자들은 너도나도 그에게 "흥행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수상작만 만들어달라" 고 졸라댔다고 한다.

흥행의 볼모에서 풀려난 임권택은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었던 영화문법을 마음껏 토해냈고 이것이 밑거름이 돼 80년 이후 그의 시대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영화들이 우리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관객층의 저변을 확대해 온 것은 잘 알려진 바다.

제작자 이태원은 80년대 이전에 영화배급업자로, 그 이후엔 우리영화 제작을 겸한 외화수입업자로 활동했다.

'뽕' '무릎과 무릎 사이' 니 하는 가장 노골적인 상업영화 제작으로, '다이하드' 수입으로 재미를 보다 이른바 국민영화라는 '서편제' 이후 완전히 변신, 우리영화 제작에만 전념했다.

영화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돈된다는 외화수입.외화배급을 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안다.

젊은 영화인들이 도도하게 영화계를 장악한 가운데 그는 오로지 우리영화가 일본처럼 칸같은 해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다.

임권택과 이태원, 그리고 정일성이 다시 손잡고 대부분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을 받으면서도 내년에 '춘향전' 을 만들고자 하는 것도 우리영화계의 숙원을 '늙은 우리' 가 한번 풀어보자는 것이다.

우리영화가 이나마라도 오기에는 이들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스크린쿼터를 언제까지나 지속시킬 수야 없겠지만 근년 우리영화의 괄목할 성장은 스크린쿼터라는 비빌 언덕이 있어 가능했다는 영화인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헌익 문화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