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가 '性매카시즘' 확산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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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에 이어 밥 리빙스턴 차기 하원의장 내정자마저 혼외정사로 중도하차하면서 미국에서는 소위 '성적 (性的) 매카시즘 (Sexual McCarthyism)' 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공직자들의 성적 문제 등 사생활에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기준을 적용, 이들을 몰아내려 하거나 사퇴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세태를 50년대 진보성향의 인사를 빨갱이로 몰아붙였던 '매카시즘' 에 빗댄 것이다.

뉴욕타임스지는 20일 이같은 현상에 대해 금욕을 강조하는 청교도주의의 부활에 비유하며 "리빙스턴은 클린턴을 몰아내기 위해 휘두르던 '성적 (性的) 청교도주의' 라는 무기에 자신이 희생당한 꼴이다.

이는 탄핵을 둘러싼 양당 대립을 보다 심각한 국면으로 만들고 있다" 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지도 이번 리빙스턴의 사임이 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래리 플린트의 정치인 추적에 의해 촉발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각종 미디어의 폭로전쟁과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의 발달로 공직자들의 사생활은 다 발가벗겨진 상태이며 적절한 여과장치와 신중한 보도태도가 요구된다" 고 밝혔다.

볼티모어 선지도 사설을 통해 "리빙스턴의 사임으로 미국 정치는 위험한 성적 공방시대에 직면하게 됐다" 고 우려했다.

이같은 우려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대다수가 탄핵에 반대하고 있는데도 클린턴 탄핵이 강행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양당 대립이 자칫 상대방의 성문제 파헤치기로 이어져 국민들의 정치권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 또 도덕 기준이 엄격하게 강요된다면 클린턴 탄핵을 주도하고 있는 헨리 하이드 하원 법사위원장같이 혼외정사 사실이 공개된 뒤에도 공직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의원들에게 엄청난 도덕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일 하원 탄핵투표에 앞선 토론에서 성적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제럴드 내들러 (민주.뉴욕) 의원은 "앞으로 사람들이 공직에 취임할 때마다 '당신은 혼외정사 경험을 갖고 있거나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느냐' 고 묻는 청문회를 열어야 할 판" 이라고 개탄했다.

◇ 매카시즘이란 = 50~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 (反) 공산주의 선풍. 공화당의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 50년 2월 "국무부 안에 2백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 는 폭탄발언을 한데서 발단이 됐다.

매카시는 상원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진보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았으며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이 반공노선을 걷게 됐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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