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경기저점론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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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로라 하는 경기전망기관들이 경기가 곧 바닥을 칠 것이라는 전망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경기가 바닥을 치고,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던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이제는 "금년 4분기가 경기저점일지 모른다" 는 식으로 말을 바꾸고 있다.

한때 이런 전망에 대해 냉소적이던 민간연구기관들도 서서히 경기저점을 앞당길 정도다. 갑자기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9개월 정도 후에나 판단이 가능한 경기저점을 예단하는 까닭은 무얼까. 일부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듯, 최근 '경기 불지피기'에 무슨 속셈이 있는 것일까.

최근 경제의 이곳저곳에 경기저점 도달을 예고하는 지표상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사실이다. 또 9월말의 은행 구조조정 '1단계 마무리'와 이달 재벌구조조정의 향후추진계획 마련도 분위기 전환에 한몫 하고 있다.

구조조정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제거됨으로써 금융경색이 풀리고 이에 따라 경제가 다시 '잠재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경제지표의 변화와 또 구조조정의 약속만으로는 최근 가열되는 경기저점 논의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 경우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선언효과'다. 경기가 다시 좋아진다고 해야 움추려 있던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그래야 기업투자도 되살아나고 그 결과 한계기업의 부도나 실업증가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경제회생에 목을 걸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입장도 일부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즉, 경제위기를 맞은 나라에 대해 잘못된 처방을 강요했다는 비판에 휘말린 IMF (국제통화기금)와 그 후견인인 미국의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IMF의 지원을 받고 그 개혁프로그램을 수용한 한국이 성공적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벗어났다"는 '업적'이 필요하다.

한국 외에는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 국제투자자금도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입빠른 전문가들 사이에 가장 설득력을 보이는 설명은 '국민의 정부'가 경제위기 타개능력을 과시해야 할 시점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98년 위기극복, 99년 구조조정, 2000년 재도약'을 내걸었던 정부로서는 경기회복이 하루가 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집권 2년째에 들어서도 과거 정부 탓만 할 수는 없고 게다가 2000년에는 총선도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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