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10권 집필 여류작가 최명희씨 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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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하소설 '혼불' 의 작가 최명희씨가 11일 오후 5시 서울대병원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51세.

꼬박 17년을 끌어안고 쓴 원고지 1만2천여장, 전5부 10권으로 '혼불' 을 완간한 지 꼭 2년만이다.

30년대 전북 남원지방 매안李씨 가문의 며느리 3대를 줄기로 양반과 상민의 삶을 고루 그려낸 '혼불' 은 세시풍속. 관혼상제. 전통음식. 촌락구조 등을 방대한 고증을 통해 형상화, 호남지방 풍속사의 문학적 박물관같은 작품이었다.

근대사회의 격랑 속에서도 기품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생명력을 묘사한 작가의 문체 역시 그윽하고도 강렬한 맛이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극한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돼 왔다.

보성여고 교사로 재직중이던 작가는 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그해 4월부터 '혼불' 집필을 시작했다.

7년여의 월간지 연재와 두달간의 중국취재, 여러 해의 퇴고를 거쳐 세상에 나온 예술혼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96년 12월 출간 직후 첫 한달만에 10만부가 팔려나갔는가 하면 97년 7월 결성된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과 호암상.단재상.세종문화상 수상소식이 차례로 격려에 나섰다.

그러나 이때 이미 작가는 '혼불' 집필 말미에 발견된 암과 세차례 수술을 거치는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던 상태였다.

사전에는 안나와 있는 '혼불' 의 뜻이 작가의 말대로 '정신의 불' '목숨의 불' 임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최명희는 '혼불' 을 쓰기 위해 태어난 것" 이란 어느 지인의 말대로, 작가는 '혼불' 10권에 스스로의 혼불을 고스란히 불살라넣고 다른 세상으로 갔다.

장례는 15일 작가의 고향인 전주 덕진공원 내 최명희 문학공원. 유족으로는 동생 용범. 선희. 대범. 은영. 민영씨가 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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