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타려 배 '고의 침몰'…법정서 밝혀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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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화물선을 침몰시켜 배값의 두배가 넘는 보험금을 타내려던 선주와 선장이 법정에서 고의로 침몰시킨 것이 밝혀져 보험금을 한푼도 못받게 됐다.

D해운 소속 냉동참치 운반선 야요이호는 지난해 4월 7일 오후 11시쯤 인도네시아 중부연안 라시섬 근처를 항해하고 있었다.

당시 선장 印모씨와 기관장 정모씨는 평소와 달리 선원들을 모두 쉬게 하고 각각 항해와 기관당직을 서고 있던 상태. 그런데 밤바다를 미끄러져 나가던 야요이호의 기관실에 갑자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곧 퇴선 준비를 하라는 선장의 방송이 있었고 선장과 기관장이 나눠준 맥주까지 마신 선원들은 자정 무렵 구명보트에 몸을 싣고 침몰하는 배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96년 3월 11억원짜리 배를 구입, 보험금 25억원의 선박보험에 가입했던 D해운측은 배 침몰을 이유로 H.J화재해상보험측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이들 보험사는 "비정상적인 당시 상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며 서울지법에 채무 부존재 확인소송을 냈다.

우선 잠수부를 동원해 배를 조사한 결과 산호초에 부딪쳤다는 선장의 주장과는 달리 선체 밑부분에는 특별한 충돌 흔적이 없었다.

오히려 해수 흡입구 밸브의 볼트와 너트가 풀린 채 뚜껑이 열려 있었다.

또 승선 경력 20년의 선장이 배에 물이 차는데도 적절한 조치 없이 무조건 퇴선 준비만을 시키고 더구나 비상사태 앞에서 술을 마시게 한 것도 상식적인 행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선장은 배를 탈출하며 항해일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했을 뿐 합리적인 진술을 하지 못했다.

결국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 민사합의21부 (재판장 李弘權부장판사) 는 "여러 정황상 선장과 선주가 공모해 배를 고의로 침몰시킨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원고들은 보험금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며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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