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의원잇속에 국민건강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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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테네시주 상원의원은 흉부외과 전문의 빌 프리스트다.

하버드의대 출신으로 지금까지 2백여 건의 심폐이식술을 집도했다.

97년 의사당 총격사건 때 현장에서 두 명을 응급처치해 생명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의정활동은 그가 20년 동안 몸담은 의료계가 아니라 철저하게 국민을 위해 이뤄지고 있다.

부유층을 위한 의료비 지출을 삭감하고 대신 오갈 곳 없는 노약자를 위한 의료보호기금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 연방정부가 보다 많은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 사례.

그는 미국인들에게 돈 많은 의사가 아니라 미국의 보건과 복지를 향상시킨 상원의원인 것이다.

최근 경실련을 비롯한 14개 시민단체는 의약분업 연기론을 우려하며 완전의약분업을 촉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99년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의약분업을 약사법 개정을 통해 연기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배후는 의약분업을 내심 반대하는 의사와 약사 단체, 주역은 의약계 출신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다.

지난 국정감사 때 제약회사 사장 출신인 金모의원은 의약분업의 3년 연기를 주장했으며 이미 의약분업 연기를 촉구하는 두 단체의 청원서가 국회에 제출되는 등 의약분업 연기론은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국민의 뜻으로 합의된 의약분업이 이익단체의 로비와 국회의원들의 '팔 안으로 굽기' 로 유야무야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의약분업 실시로 5천여억원의 보험재정이 추가로 드는데다 국민들도 매우 불편해 하리란 것. 그러나 전문가들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현행 의약품 마진을 줄이면 1조원 이상의 재원이 마련된다고 반박한다.

시민단체들은 국민들도 의약품 남.오용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감안, 불편함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민주사회에서 이익단체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소비자의 이익이 항상 절대 선은 아니다.

그러나 의약분업은 이익의 문제가 아닌 원칙의 문제다.

'건강' 을 담보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시민단체들이 이들 국회의원에 대해 법원에 직무정지 가처분신청까지 해야한다고 나섰을까. 분노로 가득찬 기자회견장을 떠나며 과연 국회의원은 누구를 위한 공복인지 묻고싶어졌다.

홍혜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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