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 전 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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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창작은 물론 작가가 한다.

하지만 전시는 큐레이터의 몫이다.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이 어떻게 작품을 해석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어떻게 기획하고 무엇을 느끼느냐에 따라 한 작품은 얼마든지 재탄생을 거듭할 수 있는 것이다.

금호미술관 (관장 박강자) 이 개관 9주년을 기념해 열고 있는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 전은 이러한 넓은 의미의 창작행위를 '액자' 를 모티브로 압축한 전시회다.

전통적 의미의 '황금액자' 가 있는 경우, 액자가 변형된 경우, 아니면 아예 해체돼 사라진 경우…. 회화뿐 아니라 사진.설치 미술에 걸쳐 총 67명의 작품 1백여 점이 이 기준에 따라 '헤쳐모여' 를 실시했다.

신정아 큐레이터는 "미술사를 읽듯 작품들을 일렬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작품들을 흥미로운 계기를 잡아 전시함으로써 변천사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고 밝혔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액자' 를 작품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 끌어들이는 것. 김홍주의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자화상이 좋은 예가 된다.

이 그림 속의 창틀이 곧 액자다.

그림에 액자가 맞춰지는 통념을 깨고 액자에 그림을 끼워 넣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한만영과 문범은 평면의 가장자리에 오브제를 배치해 틀이 없으면서도 틀의 효과를 낸다.

액자만으로 작품이 되기도 한다.

김기수의 '액자' .투명한 아크릴 액자처럼 보이지만 다가가서 보면 투명실과 접착제를 이용한 그림자가 보인다.

그림없는 액자가 다름아닌 그림이 된다는 모순에서 이 작품은 '아!' 하고 탄성을 내뱉게 하는 매력을 준다.

액자는 있지만 작품이 없는 경우는 어떤가.

김창겸의 '반 고흐에 대한 경의에 대한 경의' 는 고흐의 '해바라기' 를 찍은 슬라이드 필름을 번쩍거리는 황금액자 안에 영사한다.

반 고흐 미술관에 이 작품을 보러갔다 접근하면 울리는 경보장치때문에 피곤해서 대충 보고 나온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들어 있다.

너무나 유명해 '다 아는 그림' 이기 때문에 내용은 유사품이 대체하고 액자만 남게 된 아이러니다.

'틀' 은 언제든지 해체가 가능하며 다시 접합되기도 한다.

수없는 변형의 되풀이다.

바로 아래 놓인 한명옥의 실타래도 끊임없는 해체와 창조의 쳇바퀴라는 비슷한 맥락을 지닌다.

모든 전시물에는 작가와 작품명이 붙어 있지 않다.

흐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 하지만 기획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볼 일반 관람객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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