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 'Free World(자유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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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World(자유 세계)
Timothy Garton Ash, Allen Lane, 18파운드

9·11이후 세상이 달라졌음을 누구나 실감한다. 먼저 알카에다 등 9·11의 가해자격인 아랍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시에 그런 조직과 맞서 전쟁을 벌이는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저서를 찾는 손길이 많았다.

최근 영국에서 출간된 『Free World(자유 세계)』는 좀 독특하다. 9·11 이후 달라진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다 넓게, 다소 미래지향적으로 보는 책이다. 미국이나 아랍의 치열한 대립적 시각이 아닌 유럽적 시각이라 보다 객관적이다. 전쟁이나 테러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가 국제 정치, 특히 유럽과 미국의 관계에 미친 영향을 정리했다는 의미에서 시각이 넓다. 궁극적으로 9·11 이후 달라진 세상에서 세계적 차원의 자유 신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미래지향적이다.

저자 티모시 가톤 애쉬는 영국인으로 옥스퍼드 대학과 미국 스탠퍼드 대학을 오가며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저술가. 특히 동유럽 몰락 과정에 대한 저술로 유명하다. 양 대륙을 오가며 활동하는 저자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미국과 유럽 사이의 균열이다. 미국과 유럽은 곧 자유로운 세계, 즉 사회주의 붕괴 이후 국제사회를 이끌어가는 양대축이다. 미국의 단일 패권시대를 맞아 유럽이 사회주의를 대신한 안티 세력으로 등장함으로써 자유 세계의 리더십이 손상될까 우려한다. 다소 서구 중심적인 발상이지만 미국식 일방주의와는 다르다. 인도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접근이라 미국에 비판적인 대목이 많다. 시각이 선명하진 않지만 메시지는 명료하다. 세계의 민주화와 자유화,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미국과 유럽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는 미국과 유럽의 국제 정치적 입장, 그리고 미국인과 유럽인의 서로 다른 가치관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개 영국 책이 그렇듯 주장을 반복하기보다는 사실을 나열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이는 글쓰기다.

이라크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미국과 유럽의 균열은 심각했다. 9·11이 터진 당시 유럽이 미국인에게 보낸 가장 유명한 조의(弔意)는 “우리는 모두 미국인입니다”라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헤드라인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의 일방적 전쟁에 유럽이 명백한 반기를 들었다.

유럽적 시각에서 볼 때 침략전은 두 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다. 하나는 무력 침략을 당했을 경우며, 다른 하나는 유엔의 결의를 얻었을 경우다. 이라크의 경우 알카에다와 무관하며 유엔의 결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의 주장 (이라크가 알카에다와 연관돼 있다-이라크가 WMD(대량파괴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따라서 테러 세력이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불과했다.

미국의 정책이 이처럼 극단적이며 단순한 형태로 관철되는 메카니즘에 대한 지적도 흥미롭다. 워싱턴에는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브레인으로 신규 채용할 수 있는 주요 보직이 3000~5000가지다. 이 자리를 노려 많은 민간 전문가들이 경쟁한다.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와 자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메시지를 단순하게 만들어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이다. 미국 정치학자의 논문이 ‘구인 광고’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대개 외교 경험이 부족한 대통령은 구미에 맞는 전문가를 사들이게 된다. 이렇게 채용된 전문가들은 단순명쾌한 이상을 실현하고자 매진한다. 그러나 미국은 학자들의 학설을 실험하는 장이 되기에는 너무 막강하다.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에 전쟁에 반대하는 유럽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을 보여주는 유명한 말은 미 국방장관 럼즈펠드의 “늙은 유럽”이다. 이에 대해 유럽 지성인 사이에선 “미 제국주의는 이제 적으로 분류돼야 한다”(독일 저명 칼럼니스트 클라우스 코흐)는 선언까지 나올 정도였다.

유럽의 대표적 지성인 독일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정리한 ‘유럽 국가의 6가지 조건’은 미국에 대한 점잖지만 날카로운 비판론이다. 그 첫째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처럼 백악관 회의를 기도로 시작하는 리더십, 실제로 종교적 신념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지도자가 인정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 마지막은 국제관계에서의 상호협의다. 즉 유엔의 결의 없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는 논리의 근거다.

저자는 미국과 유럽의 상황과 가치관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균형을 잡고자 애쓴다. 그러나 글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유럽의 입장이 더 성숙돼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양차 대전을 겪으면서 얻은 지혜라고 한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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