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유전자, 여자, 가모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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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여자, 가모브
원제 Genes, Girls and Gamow, 제임스 왓슨 지음, 이한음 옮김, 까치, 383쪽, 1만4000원

책을 읽는 내내 번역서 제목을 ‘손님 끌 수 있도록’ 포장 했겠거니 싶었다. 그 유명한 자연과학자의 자서전이라고 하니 원제는 고상하고 ‘폼을 잡은’제목이었겠거니 싶었는데 원제 역시 그랬다. 내용 역시 일반인의 통념과 따로 논다. 1962년 노벨상 수상자인 왓슨이 1953년에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경위와 그에 얽힌 스토리를 밝힌 책『이중 나선』(전파과학사) 이후 자기 삶과 학문을 새롭게 담은 이 책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러기는 커녕 세기적 과학적 발견의 뒷얘기와 함게 자신의 젊은 시절 여성 헌팅을 둘러싼 사생활을 너무도 솔직하게, 그것도 수시로 털어놓고 있어 당혹스럽기 조차 할 지경이다. 머리말을 쓴 동료 피터 폴링은 이 자서전 자체가 크리스타 마이어라고 하는 여성에게 왓슨이 채인 뒤 그것에 자극을 받아 썼을 것이라고 농담 섞인 말을 하며 이렇게 조언을 한다.

“나는 커피 탁자나 미용실에 이 책을 가져다 놓기를 권하고 싶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말리는 동안 읽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 이 자서전은 ‘생물학의 로제타 스톤’으로 불릴만한 그 유명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엄청난 스토리와 “소소한 이야기”(폴링의 표현이다)로 짜여진 ‘이중 나선’ 식의 서술이다. 불과 25세 때 ‘삶의 대박을 터뜨린’ 왓슨의 경우 대 과학자라는 모습과 달리 다른 연구에서 실적이 부실해 교수 임용에서 탈락할까 걱정의 연속이다.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도 혹시 틀렸다고 지적당할까봐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정말 흥미로운 것은 여성에 대한 못말리는 관심이다.

꼭 여성 스토리가 등장할 필요가 없는 대목에서도 주변의 아름다운 여성에 곁눈질을 하는 자기 모습을 자주 고백한다. 그 모습에서 “아하, 유명하다는 과학자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구나”하는 위안을 받을 만 하다. 왓슨 뿐이 아니라 그의 동료들도 그런 모습으로 묘사되니까. 이를테면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드럼을 연주하는 기벽을 가진 사람이고, 거구의 러시아 태생 물리학자 역시 늘상 위스키 잔을 손에 든 괴짜로 서술된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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