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금강산도 '存後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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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남북관계의 현실은 금강산관광 쪽인가, 강화 앞바다 간첩선 쪽인가.

금강산쪽을 보면 낙관적인 생각이 들고 간첩선을 보면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낙관.비관적인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으니 사람들 마음은 혼란스럽다.

한.미 정상회담은 대북 (對北) 포용정책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포용정책, 바꿔 말해 햇볕정책이 금강산관광을 낳았으니 계속 금강산을 가보라는 얘기로 들린다.

요즘 TV도 연일 금강산이다.

간첩선 얘기는 그때 그뿐이었고 시간마다 금강산, 금강산 얘기가 쏟아진다.

이처럼 표면상 분위기는 금강산쪽이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간첩선은 어찌할 것인가.

남북간에는 그런 돌출사건이 있게 마련이라고 예민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햇볕정책도 철통같은 안보태세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데, 그럼 간첩선이 침투해도 우리 안보는 괜찮다는 뜻인가.

군은 간첩선이 해안 가까이 침투할 때까지도 감지하지 못했고, 뒤늦게 발견한 후에도 작전에 실패했다.

달빛도 없는 밤 후미진 곳에 숨어든 간첩선을 두시간동안 놓쳤고, 얕은 수심 (水深)에 적합한 함정이 없어 보고도 못잡았다.

그 와중에 비무장 행정선까지 출동시켰는가 하면 뒤쫓던 우리 함정들은 낮은 수심의 모래등에 걸려 좌초하기도 했다.

늑장보고로 '진돗개 하나' 는 두시간 후에나 발령되고 대통령에겐 10시간이 지나도록 보고되지도 않았다…. 이것이 그날의 우리 안보실태였다.

이런 안보를 전제로 햇볕정책인들 온전할 수 있을까. 햇볕정책이 성공하자면 북한이 교류 - 화해 밖에는 딴 길이 없다고 믿게끔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심낮은 바다는 언제나 거기 있고 달없는 날도 하루이틀이 아니다.

북한이 보기에 군사력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들이 그토록 하기 싫어하는 화해에 응할 리가 없다.

결국 우리가 금강산을 원하면 원할수록, 화해를 원하면 원할수록 금강산보다는 간첩선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간첩선이 못들어 오게 하고, 들어오는 간첩선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조리 격침.나포당한다는 걸 북이 믿도록 해야 금강산도 마음놓고 가볼 수 있고 화해의 길을 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안보태세가 확립되기 전이라도 도발을 그냥 넘겨서는 안된다.

반드시 불이익을 주거나 최소한 '불쾌감' 이라도 표시하는 게 중요하다.

북한이 잘 하면 협력과 실익 (實益) 의 상을 주고, 잘못하면 불쾌감.불이익의 벌을 줘야 하는 것이다.

이번 간첩선에 대해서도 가령, 항의표시로 금강산 관광객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하자. 그것이 북에 그리 큰 근심거리가 안될지 모르나 북한 내부에 파급효과도 있을 수 있고, 최소한 우리대로의 불쾌감 표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사일발사나 핵의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경협프로젝트의 보류.연기.취소 등 가능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불이익 또는 불쾌감의 뜻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비록 우리의 대북 카드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징적인 불쾌감 표시나 취할 수 있는 불이익조치까지 취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북에 대해서도 지켜야 할 자존심은 지켜야 하고, 그래야 우리대로의 존립과 국민통합이 가능해진다.

이런 우리의 불쾌감 표시 또는 불이익조치가 혹시 긴장고조를 가져올지도 모르고 보고 싶은 금강산을 보기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이 간첩선을 보내든가 우리를 겨냥해 핵을 만든다면 우리로서도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우리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가령 금강산 구경은 좀 천천히 하기로 마음을 먹자. 교류나 화해도 우리가 원한다고 일방적으로 되는 게 아니다.

좀 천천히 추진하자. 기업들도 북한 투자가 비록 장래성이 크게 있다 하더라도 북이 간첩선을 보내고 핵개발을 한다면 불가불 시기를 좀 늦추기로 하자.

그리고 무엇보다 수심이 낮은 바다에서도 간첩선을 추격, 나포할 수 있는 함정을 만들자. 달빛이 없어도 간첩선을 감지하고 수색.격침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자. 다급하다고 비무장 행정선을 출동시킬 게 아니라 잘 무장된 쾌속정도 만들자. 경제위기 속에 우리 모두 쪼들리지만 그런 일에 쓸 돈이라면 써야 하지 않겠는가.

당국은 간첩선침투를 '중대한 군사도발' 이라고 했다.

중대한 군사도발을 받고도 아무 것도 않고 그냥 있다는 건 우리 스스로 존립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食後景) 이라지만 금강산은 우리가 존립하고 난 후에야 볼 '존후경 (存後景)' 이기도 하다.

송진혁(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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