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비 '슈퍼맨'크리스토퍼 리브 감동의 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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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95년 말에서 떨어져 전신마비가 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46)가 TV영화에 출연, '인간승리' 의 진한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현재 휠체어와 호흡기에 의지한 채 어깨 아래를 전혀 쓰지 못하는 리브는 미 ABS방송의 영화 '이창' (裏窓.Rear Window)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리브는 자동차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건축설계사 제이슨 켐프 역할을 맡아 오직 얼굴 표정으로 모든 연기를 소화해냈다.

'이창' 은 54년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만들어 전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심리극을 같은 제목으로 리메이크한 작품. 무료함을 달래려는 주인공이 아파트에서 자기 방 뒤창문 (이창) 으로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다 살해사건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엮은 것이다.

주인공은 피해자의 남편이 범인이라는 심증을 갖고 자기의 애인과 친구인 형사에게 말하지만 믿어주지 않는다.

이를 알아챈 범인이 전신불구로 꼼짝하지 못하는 주인공 리브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오는 위기의 순간. 그러나 그가 이를 기지로 극복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번 영화는 리브의 처지를 살려 빨대를 이용, 호흡으로 조종하는 휠체어와 음성인식 컴퓨터 등 첨단장비를 등장시키는 등 현대판으로 재구성했다.

또 리브가 중환자실과 재활치료 과정에서 겪었던 험난한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그는 생명줄인 플라스틱 호흡장치가 목에서 빠져 질식상태가 되는 모습을 실제로 연기하기도 했다.

사고후 영화에 처음으로 출연한 리브는 "나 자신도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일은 나에게 분노와 좌절감 대신 해방감을 줬다" 며 26일간의 촬영소감을 피력했다.

23일 그의 영화가 처음 방영되자 미 전역은 불구를 극복하고 새롭게 팬들 앞에 선 그의 불굴의 의지에 박수를 보냈다.

타임지는 23일자에서 "그의 재능은 여전히 건재하며 감동적인 연기를 펼쳤다" 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78년 '슈퍼맨' 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뒤 인기절정에 올랐던 95년 5월 승마경기 도중 낙마 (落馬) 한 그는 당시 그의 어머니조차 안락사를 요청할 정도로 소생 가망이 없었다.

그러나 6개월간의 재활센터 생활, 11차례에 걸친 혈전증과 폐허탈증 및 폐렴으로 인한 재입원 등을 투혼과 집념으로 딛고 일어서 세인의 심금을 울렸다.

이후 그는 96년 온몸과 머리를 휠체어에 묶은 채 영화 '황혼 속에서 (In the Gloaming)' 를 감독했고 지난 4월에는 '바로 나 (Just Me)' 라는 회고록을 발간했다.

리브의 재기는 곁을 떠나지 않은 채 3년째 수발을 들고 있는 아내 다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92년 결혼한 다나는 '황혼 속에서' 에서 주제가를 직접 불러주는 등 리브를 위해 헌신적 사랑을 쏟으며 리브에게 힘을 주고 있다.

25만 장애인의 대변인으로 배우 때보다 더 분주히 활동하고 있는 리브는 "50세가 되는 2002년 생일 때 홀로 일어서 건배를 제의할 수 있게 될 것" 이라며 전세계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꿈을 주는 영웅이 되고 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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