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문제를 바라보는 두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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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방한 바그다드大 교수 압두릴라 파딜 인터뷰]

최근 바그다드대 인문대 부학장 압두릴라 파딜 박사가 방한, 8년간의 경제제재조치로 피폐해진 이라크 사회상을 상세히 설명했다.

본지는 이미 '이라크는 지금' 시리즈를 3회 (20~23일) 연재한 바 있으나 독자들의 이라크사태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설명과 최근 이라크를 다녀온 인사들의 방문소감을 종합, 이라크 사회상을 한차례 더 싣는다.

아울러 파딜 박사의 인터뷰와 앤서니 코즈먼 미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 논문도 요약, 게재한다.

한.이라크 친선협회 이라크측 회장을 맡고 있는 이라크 최고의 바그다드대 인문대 부학장인 압두릴라 파딜 (57.고고학) 교수는 유엔의 이라크 사찰이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16년 동안 고고학을 강의한 이라크 최고의 고고학 권위자인 그는 후세인 대통령 측근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협회의 한국측 파트너인 창조사학회 (회장 張國遠 한세대교수) 초청을 받아 지난 14일 입국, 29일까지 머무르며 바그다드대와 한국 대학과의 교류방안을 협의중이다.

- 미국의 이라크 공습 결정이 내려졌던 지난 13일을 전후한 이라크 현지 표정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지난 90년 걸프전 이후 공습에 대비한 민방공훈련을 수없이 시행해왔다. "

- 서방측은 이번 위기가 전적으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독단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유엔특별사찰단 (UNSCOM) 과의 협력을 일방적으로 단절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말이 안된다.

유엔은 90년부터 8년이 넘도록 이라크내 무기사찰을 해왔다.

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고 이라크내 대학과 병원, 심지어 일반 민간인단체 사무실까지 샅샅이 뒤졌다.

더구나 무기사찰단원중 스콧 리터는 이미 미국 스파이 활동을 한 것이 드러나 지난 8월말 사표까지 제출한 상태다.

여기에다 무기사찰활동 결과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에까지 제공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

- 그러나 미국과 유엔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 관련 자료제출과 장소 접근을 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아는 한 이라크는 모든 자료를 제출했다.

그리고 제출이 안됐다면 사찰단은 지난 8년 동안 무슨 일을 했다는 건가. "

- 지난 15일 후세인 대통령이 유엔사찰활동 재개를 허용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공습이 임박한 상황에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

- 그렇다면 이라크측이 보는 합리적인 해결방법은.

"무엇보다 유엔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지킨다는 설립취지로 돌아가 공정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유엔이나 사찰단이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해서는 안된다. "

- 경제제재조치가 8년을 넘고 있는데.

"한마디로 이라크는 비참하다.

종이 한장, 볼펜 한자루 만들 형편이 안된다.

지금까지 의약품 부족으로 죽어간 어린이만 1백만명을 넘고 있다.

이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인 문제다. "

최형규 기자

['美 이라크 전략' 저자 앤서니 코즈먼 논문요약]

미국은 향후 이라크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

후세인을 축출하거나 새 정권을 세울 정책 수단이 미국에게는 없다.

그러나 중동은 미국의 안보뿐 아니라 세계의 석유 안보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고 이라크 문제는 그 일부일 뿐이지만 중동문제의 핵심중 하나라는 점에서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는 선언적 정책을 일관되게 펴나가야만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클린턴 독트린' 을 선언, ▶중동 지역의 어느 국가도 패권을 행사하려 하지 않으며 ▶영토확장에 나서지 않고▶지역 안보 틀이 자리 잡힐 때까지 미군은 걸프지역에 계속 주둔하면서 ▶지역 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라크 정책에는 특히 다음과 같은 핵심 요소들이 반영돼야 한다.

◇ 영토 = 이라크 영토 주권을 존중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쿠르드 족 등 소수 민족의 인권 보호를 중시하지만 이라크의 분할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 새 정부와 전범 (戰犯) 사면 = 누가 이라크의 새 지도자가 되더라도 후세인보다 낫다는 원칙 아래 미국은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후세인을 누구로 대체해야 한다고 미국이 나설 수는 없다.

또 이라크 정권이 바뀌어도 전범 재판을 열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후세인과 그 일족에 대한 사면을 지지해야 한다.

◇ 전쟁보상금과 대외 부채 = 이라크가 지고 있는 대외 보상금.부채는 1천5백억달러가 넘는다.

갚을 길이 없는 보상금.부채를 경감시켜주는 것은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라크에 큰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방법이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의 비참한 생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천명하고 다음과 같은 네가지 조건 아래 보상금.부채 경감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혀야 한다.

곧 ▶이라크의 새 정권이 쿠웨이트의 영토 주권을 존중하고▶테러를 포기하고 평화를 유지하며 ▶유엔특별사찰단에 협조하고 ^이라크 국민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조건이다.

◇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유엔사찰 = 이란이 군비를 확충하고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는 한 미국이 이라크의 무기 확산에 종지부를 찍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특별사찰단이 계속 이라크에 머물러 활동을 계속하고 이라크가 충실히 협조하지 않는 한 경제제재를 풀지 않으리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 앤서니 코즈먼 (Anthony Cordesman) =미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 (CSIS) 선임연구원 겸 중동 연구부장, 논문 이름 '미국의 대 이라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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