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마요네즈' 투병 이주실씨 불꽃연기 눈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니 (너) 같은 딸 낳서 내 짝 돼든가. " 엄마는 딸에게 저주를 뿌린다. 딸도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른다.

"엄마같은 엄마 될까봐 걱정이야. 엄마는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 없어. " 곧 후회하게 될, 아니면 그냥 무심코 던진 말들. 그러나 바늘로 가슴을 쿡쿡 찌르는 상처가 돼서 녹아 내린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전혜성의 원작소설 '마요네즈' 를 극화한 '마요네즈 (전혜성 작.문성희 연출.여성문화예술기획)' 는 여자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겪었을 법한 이런 모녀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02 - 765 - 4891.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어머니와 하루의 일과를 종알종알 재잘거리는 살가운 딸. 으레 이런 설정이 '모성애' 와 '친구같은 딸' 이라는 이름으로 모녀관계를 정의한다.

하지만 이 관계 어디에도 '여자' 는 없다.

엄마와 딸의 역할만 있을 뿐. 때문에 이 의무에서 한치만 벗어나도 자신들의 삶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옭아매면서 상처를 받는다.

지금까지 많은 페미니즘 작가들이 소리를 높여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로서의 여성을 말했다면 이 작품은 남녀간의 관계보다는 순수하게 여성 그 자체로서의 자아찾기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임신한 첫딸 아정 (김진희 분) 은 고집세고 무뚝뚝한 대필작가다.

여기에 어머니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모자를 쓰고, 모피코트를 탐내는 어머니 (이주실 분)가 등장한다.

극은 두 사람의 대화로 이어진다.

어떤 때는 정겨운, 또 다른 때는 징그러운 이들 두사람의 감정이 폭발하는 매개는 마요네즈다.

병든 아버지를 구박하며 머리에 마요네즈를 발랐던 욕망덩어리 엄마를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아정은 울부짖으며 "엄마만은 온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엄마니까. 엄마는 완벽해야 하니까" 라고 외친다.

기성 가치관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한 딸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비극을 그대로 답습해나가는 과정을 걷는 셈이다.

유방암 말기임에도 연기와 삶에 대한 열정으로 4월에 이어 재공연을 자청했던 이주실씨는 지난 13일 부친상에 과로까지 겹쳐 두차례 공연을 취소했다.

하지만 이후 공연에서는 놀랄 만큼 생동감 넘치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내년 1월 10일까지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 '오늘.한강.마녀' 에서 오후 7시 30분 공연. 금 오후 3시, 토 오후 4시 공연 추가.

일 오후 3.6시 공연 (월 쉼) .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