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통일그룹 '조각날'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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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8일 채권단협의회에서 통일그룹의 주력기업인 통일중공업이 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 대상에서 탈락함에 따라 통일은 재단측의 지원이 없는한 그룹 해체 - 청산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의 채권단 결정은 앞으로 잇따를 6대그룹 이하의 워크아웃 추진에서 큰 방향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 왜 이렇게 됐나 = 통일그룹 계열사들의 동반몰락은 만성적인 경영부진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계열사간 지급보증이 원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동차부품.공작기계 등을 생산하고 있는 주력사 통일중공업의 경우 지난 95년부터 적자가 확대되다 올 상반기에는 적자규모가 매출의 2배가 넘었다.

통일중공업은 최근 수년간 신규투자도 미미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메우다 보니 차입이 급격히 늘어났다 (부채비율 1천6백%) . 나머지 3개사도 지난해에 적자를 기록했고 올 들어 적자규모가 커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치밀하지 못한 경영행태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최고경영자가 자주 바뀌고 한계사업부문을 제때 잘라 내지 못하는 등 상황대처가 느리다는 지적이다.

또 적자가 나면 통일교재단측이 해외에서 자금을 끌어 공급해 주는 게 관행이 되다 보니 경영난에 둔감했다는 지적도 있다.

재단측이 올 들어서만 그룹에 지원한 자금이 1억8천만달러나 된다.

또 4개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서 준 지급보증이 각각 3천억~5천억원에 달해 한 곳이 무너지면 줄줄이 함께 무너진다는 약점도 있다.

◇ 엇갈리는 반응 = 채권단의 실사결과 워크아웃 대상이 된 4개사는 기업을 살리는 것보다 청산하는 게 유리한 것으로 나왔다.

채권단은 다만 ▶1천억원 규모의 외자유치 ▶채권단에 재단소유 여의도부지 처분권 위임 ▶경영권 포기 등의 조건을 통일측이 받아들이면 기업을 살릴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통일측은 이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이행할 수 없다고 버텨 결국 통일중공업.일신석재가 워크아웃 부적격 판정을 받고 나머지 2개사와 함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의 직권중재에 회부됐다.

통일측은 이같은 판정에 당혹스러워하면서 일단 구조조정위의 최종심의 결과가 나온 뒤 대책을 확정할 것이라고 밝히고 "법정관리나 화의 등 여러 방안을 검토중" 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여의도땅 등 보유부동산 매각과 대주주 출자 등 자구노력을 하면 회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통일측은 또 해외 석산 (石山) 개발사업이 활기를 띠고 있고 보유부동산도 많은 일신석재까지 워크아웃이 부결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입장 = 채권단에서 부적격 판정을 내린 업체를 워크아웃 대상에 계속 포함시키라는 중재안은 낼 수 없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한국티타늄과 일성건설인데 주력기업이 워크아웃 대상에서 빠진 상태에서 계열사만 살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위원회의 최종결정은 이르면 다음주초 내려질 예정인데 4개사 모두 워크아웃 중단결정이 내려지면 곧바로 부도처리될 것으로 보여 통일측이 법정관리나 화의를 신청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포기한 상태에서 법정관리.화의가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의미.파장 = 이번 결정은 이미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 (7월 29일) 된 업체를 중도에 탈락시킨 첫 사례다.

회생가능성이 없는 기업이 워크아웃을 부도 지연 수단으로 삼는다든지, 일단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된 뒤 자구노력을 게을리하는 업체는 언제라도 탈락시킬 수 있도록 한 새 지침이 적용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 6대그룹 이하의 워크아웃 신청이나 이미 워크아웃 계획이 확정.실행되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서도 워크아웃 탈락사례가 상당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재훈.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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