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계종 다시 태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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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계종이 다시 분쟁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심지어 종정과 총무원장이 정면 대립하는 데까지 치달아 마침내 갈 데까지 간 것 아니냐, 종단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항간에 떠도는 말처럼 예정된 수순이었든, 아니면 전략의 실패에 의해서였든간에, 아무튼 총무원장이 한 발 뒤로 물러서려고 한다는 소식이 그나마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기대하게 한다.

종단이 깨지는 데까지 이르기 전에 사태가 수습되더라도 외형상의 수습과는 별도로 이번 일은 그동안 되풀이된 어떤 분쟁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길 것 같다.

특히 종단의 최고 권위자이며 정신적 지도자로 돼 있는 종정의 교시에 대해 종단 행정의 대내외적 수장인 총무원장이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일은 두고두고 화농할 기회를 노리는 상처가 될 것이다.

그동안 되풀이된 조계종의 분쟁은 워낙 그 사정이 여러가지로 복잡해 한꺼번에 싸잡아 진단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적어도 불교의 종교적 본령과 나아가 이른바 성직자 일반에 대한 사회적 여망에 입각해서 보면, 그 대부분과 특히 이번 분규는 한 마디로 타락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불교분쟁에서 가까운 유래로 흔히 꼽히는 것이 50년대 이래 당시 이승만 (李承晩) 대통령의 유시로 인해 본격화된 대처승과 비구 사이의 사찰 쟁탈전이다.

그 와중에도 필요한 물리적인 힘의 확보를 위해 자격미달 승려의 급조를 비롯해 온갖 무리가 거듭됐고, 그 필연적인 결과로 이런 '갈 데까지 가는' 양상 또는 더 심한 사태까지도 우려의 목록에 들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운위할 수 있는 해결책은 결국 조계종의 자정 (自淨) 노력에 기대하는 것 뿐이다.

종교뿐 아니라 어떤 부문에서든 비리가 있을 때마다 사족처럼 붙는 것이 '일부' 어쩌고 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본령을 지키는 '대다수' 의 이들은 뭘 하고 있다는 말인가.

가짜 선지식 (善知識) 들이 간판을 내걸지 못하도록 소제를 할 의무는 일차적으로 '진짜' 선지식들에게 있는 것이다.

이 면에서는 재가불자들의 책임도 지대하다.

이번 분쟁과 또 얼마전 봉은사 사태에서 신자들이 시위에 동원돼 이용당하는 풍경은 참으로 참담한 것이었다.

종단의 일을 비판적으로 감시하고 요구할 것을 떳떳이 요구하는 재가신자들의 운동이 종단의 자정을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종교 본령의 문제와는 별도로 제도적인 문제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그동안 추이는 갈수록 종단의 온갖 권력이 총무원에 집중돼 온 양상인데, 이것은 사실상 전통적인 사찰별 독자 운영의 풍토와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추이였다고 생각된다.

불교, 특히 조계종이 표방하는 선종은 워낙 스승에서 제자로 직접 가르침을 전수하고 경지를 검증하는 사자상승 (師資相承) 의 전통을 중심으로 하는 것인데, 국가의 효율적인 종단 통제를 위해서라든가, 그밖에 여러 외적 여건으로 해서 종단의 중앙 운영체제가 마련됐던 것이다.

그러므로 현행제도처럼 총무원에 종단 운영의 온갖 주요 권한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선종의 종교적 풍토와는 근본적으로 아귀가 잘 맞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앞에서 언급한 자질이 떨어지는 승려들의 '잿밥' 거리나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온갖 종교가 선행적인 권위가 아니라 대사회적 서비스로 경쟁하는 현대 다종교상황에서 총무원과 같은 종단 운영의 중앙기구의 존재이유는 무엇보다 우선 방대하게 흩어져 있는 불교의 자원을 대민 서비스를 위해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조정기구로 일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안목에 입각해 중앙 종단 기구에 부여돼 있는 온갖 권한들을 일일이 다시 검토해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종교적 자질의 정화와 함께 조계종의 거듭남을 위해 긴요하게 추진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불교는 1천6백여년 동안 우리와 함께 하며 한국인의 종교문화, 나아가 정신문화 전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 해 왔다.

그 가운데에서도 한국 불교의 인적.물적.문화적 자원의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최대 종단 조계종이 몇 년 전에 이른바 개혁 종단을 출범시켜 모처럼 거듭남의 몸짓을 보여주었고 쇄신의 기대를 잔뜩 모았다.

그 개혁 종단이 당장 이 두 번째 총무원장 선거를 두고 다시 이렇게 타락한 분쟁의 구태를 드러낸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부디 개혁불사를 무산시키지 말 것이며 나아가 진정한 개혁, 거듭남을 통해 우리 사회와 문화의 주무대에 나서는 역량을 보여주기 바란다.

윤원철(서울대교수.불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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