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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워치] 내수 시장으로만 봤던 중국 자본 시장으로 새롭게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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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6일 베이징의 금융거리인 진룽제(金融街)의 한 고급 식당.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맨 6명이 모였다. 서울에서 온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들과 중국의 최대 자산운용사인 중국생명자산관리(CLAMC) 회사의 직원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말이 식사지 실제는 비즈니스 미팅이었다.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대화의 주제는 한국투신이 운용하게 될 중국 A주식 투자펀드인 QFII(적격외국인기관투자가) 펀드 운용을 위한 자문사 선정이었다.

“CLAMC는 중국 최대의 펀드운용사로 투자 노하우가 풍부하다. 고품질 자문 서비스를 보장할 수 있다. 같이 일을 하자.”(중국 측), “그렇다면 CLAMC의 해외투자기금인 QDII(적격내국인기관투자가) 펀드를 한국 증시에 투자할 뜻은 없는가? 그와 관련된 업무를 한국투자증권에 달라. 서로 이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한국 측)

양측은 ‘서로 잘해 보자’ 차원의 말을 건넨 뒤 회의를 끝냈다. 이날 ‘진룽제 미팅’은 한·중 경협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한 ‘자본시장 교류’의 단면이다. 한·중 경협의 큰 패러다임이 간접 무역(수교 이전)→직접 투자→소비시장 진출에서 이제는 자본시장 교류로 확대·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조강호 한국투자증권 해외사업추진실 부장은 “중국 증시 투자를 위한 최고의 파트너를 잡기 위해 주요 자금운용사와 접촉하고 있다. 중국 측도 매우 적극적으로 한국 증권사들을 대하고 있다”며 달아오르기 시작한 한·중 자본시장 교류 분위기를 전한다.

양국의 자본시장 교류는 2005년 말 등장한 ‘차이나 펀드’가 그 시작이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이 주요 투자 대상이었다. 그러나 2008년 푸르덴셜(코리아), 미래에셋 등을 시작으로 국내 증권사들이 QFII 자격을 따내면서 상하이와 선전 증시의 A주(중국 내국인 전용주)에 대한 투자가 가능해졌다. 최영호 중국삼성 금융총부 총경리는 “올해 중국 금융 당국이 승인한 11개 QFII 중 4개가 한국 업체였다”며 “국내 증권사들의 중국 진출이 늦긴 했지만 현재는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의 움직임 또한 활발하다. 중국 정부가 승인한 해외투자펀드인 QDII가 한국 증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 금융기관이 운용하고 있는 10개 QDII 펀드 중 3개 펀드가 한국에 진출해 있다. 특히 자산운용사인 상터우마건(上投摩根) 아태펀드는 6월 말 현재 11억7172만 위안(약 2110억원)을 한국 증시에 투자하고 있다. 이 회사가 해외에 투자한 전체 투자자금의 8.17%로, 홍콩과 호주에 이어 셋째로 많은 액수를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선인완궈(申銀萬國) 등 일부 중국 증권사는 아예 서울에 사무소를 차리고, 본격적인 한국 증시 연구에 나서기도 한다.

베이징 차오양(朝陽)구의 화마오(華貿)센터 13층에 자리한 한국증권거래소 베이징사무소는 또 다른 한·중 자본시장 교류의 현장이다. 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니 서너 명의 중국인이 파워포인트 화면을 띄워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회사 소개였다. 한창우 사무소장은 “한 달에 평균 4~5개 중국 업체가 한국 증시 상장을 위해 회사 소개 자료를 들고 방문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한 소장이 중국 기업들을 찾아가 한국 증시 상장 설명회를 하기도 한다. 2005년 사무소 설립 이후 방문한 중국 업체만도 450여 개에 달한다. 현재 한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은 중국원양자원, 화풍그룹 등 모두 7개다. 그 외 22개 중국 업체가 한국 증시 상장 절차를 밟고 있으며 올해 안으로 3~4개 업체가 추가로 얼굴을 내밀 전망이다. ‘시차가 거의 없어 주가 관리에 편리하다는 점, 빠른 상장 절차, 높은 유동성’ 등의 매력이 있어 한국 증시 상장을 노리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게 한 소장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자본시장 교류를 한·중 경협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보고 있다. 표민찬 서울시립대 교수는 “중국 역시 미국·유럽 등 서방 시장보다는 접근하기 쉽고, 금융기법도 크게 발달한 한국을 선호한다”며 “한국 입장에서 중국은 금융업계의 해외 자본시장 진출 대상지이자 함께 성장해 나가야 할 파트너”라고 말했다.

 베이징=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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