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정부질문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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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이 있은 13일 국회는 여야 구분이 헷갈릴 정도였다.

이날 본회의장을 뜨겁게 달군 '내각제 개헌' 문제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최장집 (崔章集) 교수와 관련한 사상논쟁' 의 와중에서 기존의 여야라는 편가름이 무색해졌기 때문이었다.

두 사안에 관한한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노선을 전혀 달리함으로써 논쟁은 국민회의 대 (對) '자민련과 한나라당' 의 대결양상을 띠었다.

게다가 이들에 대해서는 정부대표로 답변에 나선 김종필 (金鍾泌) 총리의 인식이 국민회의의 그것과는 판이했기 때문에 국민회의를 상대로 나머지 정파 및 정부가 한편이 돼 겨루는 다툼이 전개됐다.

또 내각제를 둘러싸고는 한나라당 의원들끼리도 엇갈리고, 다른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또다른 '적과 동지' 관계가 형성된 게 흥미를 더했다.

그래서 일각에선 향후 정계개편의 방향까지 암시하는 장면이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내각제와 사상논쟁에 대해 민정계 출신인 한나라당 이세기 (李世基) 의원은 김종필 총리와 노선을 같이 했다.

내각제 개헌이 이뤄져야 하고 최장집 교수의 논문이 국민의 안보의식을 해이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 반면 국민회의 길승흠 (吉昇欽) 의원은 金총리의 최근 발언을 겨냥, 해명을 요구했다.

"최장집 교수의 논문이 학문의 도를 넘었다는 金총리의 발언은 국무총리로서가 아니라 자민련 명예총재로서 한 발언 아닌가" 고 따졌다.

자민련 이태섭 (李台燮) 의원은 "어제 정당 대표 연설에서 권력구조 개편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한나라당 조순 (趙淳) 명예총재와 오늘 이세기 의원의 발언에 감사드린다" 고 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이세기 의원의 질문이 끝나자 자민련 의석에서 "잘했어" 라는 격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으며 이태섭 의원의 질문에 대해선 한나라당 의석에서 잘했다는 칭찬이 있었다.

○…남민전 (南民戰) 사건 등으로 박정희 (朴正熙) 정권 아래에서 구속.수감됐던 이재오 (李在五) 의원이 金총리를 '5.16 쿠데타의 주범' 이라고 표현하며 거칠게 비난하자 자민련과 金총리측에 비상이 걸렸다.

범죄자를 의미하는 주범이라는 표현을 속기록에서 삭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원내 사령탑인 구천서 (具天書) 총무가 본회의장에 있지 않아 속기록 삭제를 요청하는 현장 대응을 하지 못했다.

金총리측은 이재오 의원의 중앙대 선배인 변웅전 (邊雄田) 의원을 李의원에게 급히 보내 '주범 표현 삭제' 에 양해를 구했고 의장단쪽에서도 협조를 요청했다.

邊의원은 李의원에게 "5.16을 일으켰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딸 (朴槿惠의원) 이 같은 한나라당에 있는 점도 고려해 표현을 좀 완화하자" 고 설득, 李의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일부 의원들이 미리 준비한 원고와 관계없는 '즉흥' 질문으로 상대방의 신경을 건드리자 여야 의원간 고성이 오갔다.

이런 장면은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의 질문때 절정을 이뤘다.

李의원은 "경제가 이 모양인데 뭐가 경제대통령이고 준비된 대통령이란 얘기냐" 는 등의 거친 언어로 여권 수뇌부를 직접 겨냥, 여당 의원들을 자극했다.

그러자 국민회의 박광태 (朴光泰) 의원은 자리에 앉은 채 "나라를 망쳐놓고…. 위선자 이재오" 라며 고함을 쳤고, 李의원은 이에 "박광태 의원은 조용히 하라" 고 응수. 자민련 이원범 (李元範) 의원이 이재오 의원을 향해 "말조심하라" 며 가세하자 국회 본회의장은 순식간에 맞고함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로 변했다.

○…김종필 총리는 야당 의원의 인신공격성 질문에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답변에 나서서는 특유의 여유를 보였다.

"KBS 드라마 '야망의 전설' 에 나오는 장영필이라는 잔혹한 인물이 金총리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얘기가 돈다" 는 질의에 대해 "드라마를 보지 못해 내용은 모르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라며 "그냥 흥미를 가지고 보시라" 고 일침.

○…박상천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정치인 사정,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 국세청 불법모금 사건 등의 질문에 원론적 답변과 호소로 답변을 피해갔다.

朴장관은 국회의원을 겸하고 있는 처지에서 수사지휘를 해야 하는 인간적인 어려움도 여러차례 토로했다.

의원석을 향해 "동료 의원 여러분과의 남다른 관계 때문에 수사에 고충이 있지만 엄정하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해달라" 고 했다.

그는 또 "지난번 국감때 법사위 한 의원이 '장관은 사정에 관한한 실세가 아니더라' 고 했는데 그말이 맞다" 며 "수사는 검찰에 맡기고 실세가 안되기로 작정했다.

청와대에도 정보보고만 하고 있다" 고 해명. 이어 "수사는 정보와 달라 증거가 없으면 착수할 수 없다" 는 말로 정치인 사정 수사의 어려움을 고백.

전영기.이상렬.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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