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족 미스터리 풀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매처럼 강인했던 민족'.

1000여년 전 중국 동북 지방에서 일어나 중원을 강하게 압박했던 요(遼)나라 거란(契丹)족에 대한 평가다. 거란은 993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입했던 강국이었다. 1018년 강감찬 장군이 적장 소배압을 상대로 귀주대첩을 거둔 것으로, 거란은 고려에 대한 야심을 접어야 했다.

한데 이렇게 강성했던 거란은 몽골이 세운 원(元)대 이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 어떻게 한 민족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었을까.

중국 역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거란족 실종에 관한 의문이 최근 들어 조금씩 풀리고 있다. 거란족에 대한 문헌 연구,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 분석기법을 동원한 성과다.

중국 학계는 최근 "거란의 핏줄은 중국 동북 지방의 소수 민족인 다얼(達爾)족에 의해 상당부분 계승되고 있다"고 밝혔다. 동북지방의 싱안링(興安領)산맥과 푸르고 맑은 넌(嫩)강, 후룬베이얼(呼倫貝爾)의 드넓은 초원이 한데 모인 곳에 살고 있는 12만명의 다얼족은 예전부터 '거란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가장 큰 민족'으로 지목돼 왔다. 거란이 웅거했던 네이멍구(內蒙古) 초원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학계는 이번에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냈다. 요나라 당시의 무덤에서 나온 거란족 피장자들의 뼈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다얼족 구성원들의 유전자와 비교한 결과다.

다얼족에 구전으로 전해져 왔던 시조 설화도 그들이 거란의 후예임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설화는 "거란의 한 군대가 이 땅에 와서 지역 방어를 위한 성을 쌓은 뒤 선조가 됐다"고 읊고 있다. 과거 청(淸)대 학자들도 이들의 시조 설화와 다얼족의 습속.언어.역사를 종합 연구한 끝에 "다얼족은 거란족의 후예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중국 학계는 서남쪽 윈난(雲南)성 내 일부 지역에도 다얼족이 10만명가량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윈난성의 한 산골 마을 사람들은 거란의 시조 '아쑤루'의 한자식 이름인 '야율(耶律)'이란 글자를 액자에 넣어 사당에 걸어 놓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중국 학자들은 네이멍구에서 나온 요나라 시대 무덤 피장자와 이들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윈난 다얼족 사람들 역시 거란족 부계(父系) 혈통을 그대로 전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거란족의 후예들은 왜 이처럼 멀리 떨어져 살아남은 걸까. 이에 대해 중국 학계는 학술 성과와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토대로 "거란족이 몽골 군대의 전위부대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은 이렇다. 요나라 멸망 뒤 자신을 공격했던 금(金:여진에 의해 세워진 왕조)을 증오하게 된 거란족은 몽골과 손을 잡았다. 곧이어 칭기즈칸에 의해 몽골이 대제국으로 성장하면서 용맹한 거란족은 원 왕조가 편성한 정복부대의 선봉으로 배치돼 세계 곳곳에 파견됐다. 그 결과 거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결국 중국 내 중요한 민족세력으로 부상할 기회를 잃었다. 중국 학계는 거란족의 일부가 요나라 멸망 뒤 현재 이란의 코르만 지역으로 이동해 이슬람 세력으로 귀화했다는 설도 소개했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