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프로덕션 모임 '영상기록 다큐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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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독립영화와 독립 프로덕션. 얼핏 흡사한 어감이지만 이들은 대척점에 서있다.

영화를 찍는 사람들이 아예 돈일랑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 골몰하는 동안, 프로덕션은 상업성에 찌든 공룡 방송사와 힘겨운 흥정을 해야 했다.

몇달전 이둘이 만나 '영상기록 다큐 인' 이란 집단을 탄생시켰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이 단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무척 가난한 것을 빼면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별로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가림막을 두르고 벌여온 일들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의혹의 시선은 기대로 바뀌고 있다.

이 집단의 대표인 박성미PD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퇴계원 산대놀이' 가 지난달 28일 KBS1 '수요기획' 의 전파를 탔다.

돈을 많이 받은 것도, 시청률이 높았던 것도 아니지만 이들에겐 의미가 컸다.

박PD의 말 - "회사 이름에 '영상기록' 이란 단어를 썼듯 우리는 잊혀져가는 모든 것을 화면으로 보존할 작정입니다. 퇴계원 산대놀이로 첫발을 디딘 거죠. " 독립영화쪽인 박종필 감독은 서울 서소문공원에서 노숙자를 찍고 있다.

노숙자를 주제로 삼은 프로야 TV를 통해서도 많이 봤지만 박감독의 접근은 애초부터 다르다.

함께 걸식에 들어간 게 지난 2월. 카메라를 댄 건 그로부터 5개월 후다.

그들과 거의 하나가 된 다음에야 영상기록을 시작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일본 NHK에서 탐날 만큼의 액수를 제시하며 구입의사를 밝혀왔다.

그러나 일단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노숙자들과의 신뢰를 고려해서였다.

대신 인권영화제에 출품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추후 논의를 계속할 방침이다.

외국인근로자를 수년째 따라다닌 김도균 감독은 얼마전 프랑스로 갔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외인부대 촬영을 위해서다.

이번 작품은 TV에 걸 생각이다.

정교함보단 치열한 현장 의식으로 무장된 이들 7명은 상이한 서로의 지향점을 조율하기 위해 '총회' 라는 독특한 운영장치를 마련했다.

작품 계약 등 주요 사안들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노숙자 필름의 판매 보류도 여기서 결론난 사항이다.

벌어들인 돈은 동참한 사람들이 나눈다.

양심껏 자신의 기여도를 적어 그것을 기준으로 분배하는 다소 공산주의적인 발상이다.

물론 이들도 생계를 위한 돈벌이를 한다.

하지만 기업체 홍보물보단 의미있는 작업을 택했다.

각 지방의 아름다움과 역사를 기록 영상으로 남기는 일. 이를 위해 지자체를 다니며 설득 작업을 했다.

'영상기록 다큐 인' 이 세운 원대한 목표는 제도권, 말하자면 방송사나 영화사에서 제발로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대의 기록을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충실하면서도 당당하게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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