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고 酒毒 풀기에 좋고… ‘한가위 과일’ 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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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추석 전후가 제철인 한가위 과일이다. 추석 차례상에 올라가는 조율이시(棗栗梨?:대추ㆍ밤ㆍ배ㆍ감)의 하나다. 배숙이라는 추석 절식도 있다. 배에 통후추 서너 개를 깊숙이 박은 뒤 이것을 생강 넣은 꿀물이나 설탕물에 넣고 끓인 화채를 말한다.

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스의 역사가 호메로스는 ‘신의 선물’이라고 극찬했는가 하면, 중국에선 과일 중 으뜸이라 하여 과종(果宗)이라 불렀다.

배는 여느 과일과 달리 신맛이 적다. 유기산 함량이 0.2%에 불과해서다. 또 단맛에 비해 100g당 열량은 39㎉(신고배)로 사과(후지 57㎉, 홍옥 46㎉)보다 낮다.

배를 먹으면 금세 힘이 솟는 것은 과당 등 당분 덕분이다. 반면 당지수(GI)는 32로, 바나나(55)ㆍ포도(50)ㆍ사과(36)보다 낮다. 당지수가 낮다는 것은 해당 식품 섭취 후 혈당이 급격히 높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당뇨병 환자의 갈증 해소용 과일로 알맞다.

배에는 식이섬유(특히 펙틴)도 풍부하다. 펙틴은 물에 녹는 수용성 식이섬유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준다.

칼륨은 신고배의 경우 100g당 171㎎이나 들어 있다. 라이벌인 사과의 칼륨 함량(후지 95㎎, 홍옥 39㎎)의 두 배 이상이다. 칼륨은 체내에 쌓인 여분의 나트륨(고혈압 유발)을 몸 밖으로 배출해 혈압을 조절해 주는 미네랄이다.

또 주독(酒毒)을 푸는 데 좋은 아스파라긴산은 콩나물뿐 아니라 배에도 많이 들어 있다.
배는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아 천식ㆍ아토피ㆍ비염 등 알레르기성 질환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아기의 이유식용 과일로 널리 쓰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알칼리성 식품인 배는 산성 식품인 쇠고기 등 육류와 찰떡 궁합이다. 육회ㆍ불고기에 배를 함께 썰어 넣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배에는 단백질 분해 효소가 있어 육질을 부드럽게 한다. 또 배는 고기의 탄 부위에 생긴 각종 발암물질(벤조피렌 등)을 신속하게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고기를 먹은 뒤 디저트로 배를 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배는 충치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배를 먹을 때 오톨도톨하게 씹히는 작은 알갱이인 석세포는 구강을 청결하게 한다. 또 배에 들어 있는 단맛 성분인 솔비톨은 자일리톨처럼 충치균의 먹이가 되지 않는다.

감기ㆍ기관지염에 걸려 기침이 잦다면 배의 속을 긁어 내고 여기에 꿀을 채워 넣은 뒤 천으로 싸 푹 삶아 먹는다. 목소리를 트이게 하려면 강판에 간 배즙을 자주 마신다.

좋은 배를 먹으려면 소비자는 두 가지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먼저 껍질은 반드시 황갈색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신고배 등은 껍질이 익으면서 황갈색으로 변한다. 그러나 원황ㆍ만풍ㆍ화산ㆍ감천ㆍ만수 등 일부 품종은 다 익어도 껍질에 푸른 기가 남아 있다. 이 경우 일부러 황갈색으로 둔갑시키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품질과 맛이 떨어진다.

배는 무조건 커야 좋다는 인식도 문제다. 그래서 더 크게, 더 일찍 수확하기 위해 생장촉진제(지베렐린)를 배의 꼭지에 칠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배는 꼭지 부분이 끈적거린다. 그러나 꼭지를 바짝 잘라 내면 구별이 안 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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