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 할려고 온양온천역에 간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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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신정중 3학년 주용환군이 온양온천역에 나가 연습한 영어 명문장 발표 장면을 녹화한 뒤 영상을 다시 보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조영회 기자]

최근 온양온천역에 수상한 사람이 나타났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큰소리로 떠들고 다니는 한 젊은 청년이 눈에 띄기 시작한지 두 달이 됐다. 앞 뒤 없는 말을 누가 듣거나 말거나 혼자 떠드는 사람은 전국 어느 철도역이나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우선 이 청년의 외모가 말끔하고 나이는 중학생쯤 돼 보인다는 점, 무엇보다 혼자 떠드는 말이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 영어라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대합실에 모여 있는 승객과 마중 나온 시민들은 모두 유창한 발음으로 막힘 없이 한동안 영어 연설을 하는 이 학생에게 시선이 꽂힐 수밖에 없다.

화제의 주인공은 온양신정중 3학년에 재학 중인 주용환(16)군이다. 그는 지난 6월 충남도교육청이 도내 15개 시·군 교육청에서 동시에 개최한 잉글리쉬업 경연대회 명문암송 부문에서 금상을 차지했다. 명문암송 경연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사의 연설문 3개를 교육청이 미리 제시하고 이 중 1개를 제비 뽑기로 선택해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군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연설문 ‘Blood, Toil, Tears and Sweat’를 암송해 출전한 21명중 최고상인 금상을 받았다. 주군이 발표한 연설문은 처칠이 1940년 5월 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수상 직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한 의회 연설문으로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 달리 드릴 것이 없다”는 명언을 남겨 유명해졌다. 주군은 온양온천역 대합실을 영국 의회 삼아 승객과 시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연습을 반복 한 끝에 금상을 거머쥐었다.

다음은 오는 21일 본선 경연을 앞두고 맹연습 중인 주군과의 일문일답.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특목고가 목표다. 원하는 학교에 가려면 수상실적이 필요하다. 명문암송은 무조건 외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학교추천을 받아 지원했다. 하지만 발음은 물론 연설 당시 느낌까지 살려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왜 온양온천역을 연습 장소로 선택했나.

“명문암송 경연은 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설문을 발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막상 대회에 나가면 긴장하고 떨지 않을까 걱정돼 낯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온양온천역에서 연습을 시작했다.”

-21일 본선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각 시·군 예선을 통과한 학생들끼리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이 되기도 한다. 학원 원어민 선생님이 도교육청이 제시한 3개 연설문을 직접 녹음해 주셔서 열심히 듣고 따라 하고 있다. 온양온천역에도 자주 나가 연습하고 있다.”

-평소 영어공부는 어떻게 하나.

“영어를 특별히 잘하는 편은 아니다. 평소 영어 시험에서 틀린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단어를 몰라 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문 속에 모르는 단어를 체크하고 본문을 여러 차례 다시 읽는 방법으로 단어를 외운다.”

-대회 준비하느라 다른 공부는 소홀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대회는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학원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고 있고 다른 과목 공부도 계획을 세워 공부하고 있다.”

-장래 하고 싶은 일은 뭔가.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다. 우선은 원하는 고교 진학이 목표다.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은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잉글리쉬업 경연 본선대회도 즐기면서 준비하고 있다.”

[준비 한달 만에 금상 탄 비법]

1. 문장은 하루에 몇 시간씩 틈나는 대로 암기.
2. 외국인 녹음 테이프 듣고 따라 하기.
3.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해보고 비디오로 녹화하기.
4. 외국인에게 발음 교정 받기.

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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