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25> 林府選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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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4월 옌안에서 린뱌오(가운데서 총을 든 사람)가 연방사령관 허룽(賀龍: 훗날 10대 원수 중 한 명)과 참모장 장징우(張經武: 훗날 티베트 주둔군 사령관)로부터 새로운 무기를 소개받고 있다. 김명호 제공

장닝을 찾아낸 사람은 총참모부 부(副)총장 추후이줘의 부인 후민(胡敏)이었다. 후는 한때 장쑤(江蘇)성의 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예췬은 선비(選妃)공작이 지진부진하자 “하는 것들이 뭐 이래. 장쑤성엔 미인이 널렸다던데”라며 후민에게 투덜댔다. 후는 불안했다. 난징(南京)에 내려가 병원·학교·가무단 등을 이 잡듯이 뒤졌다. 기를 쓰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간 어느 귀신에게 물려갈지 몰랐다. “난징군구 가무단에 장닝이라는 애가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사진 한 장을 보물처럼 모시고 귀경했다. 예췬의 맘에 들건 말건 그건 다음 문제였다.

장닝은 베이징의 부총장 부인에게 편지를 전해 주라는 출장명령을 받았다. 역에 도착하자 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중 나왔다는 사람들이 시꺼먼 승용차에 태우더니 공군초대소로 데리고 갔다. 별채에 있는 최고급 방을 배정해 줬다. 장춘차오(張春橋)의 딸이라며 수군거리는 패들이 있었다. 오후에 부총장 부인이 왔다. 건네받은 편지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주머니에 푹 쑤셔 넣고 연방 예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다음날 오전 군복을 입은 두 명의 부인들과 다시 나타났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들을 끄덕였다. 해군정치위원과 공군사령관의 부인이라는 것을 장닝은 알 턱이 없었다.

중국인들은 건강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환자 같은 병태미(病態美)를 최고의 미로 여겼다. 예췬은 장닝이 고전미와 현대미 외에 병태미까지 갖췄다는 후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젊은 남자들의 평이 궁금했다.


▲장닝이 5세 때 부모와 함께 찍은 가족 사진. 왼쪽 첫째가 장닝.

복도에 발자국소리가 시끄러웠다. 장닝의 문 앞에 멈추더니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확 열자 공군 복장을 한 청년이 넘어질 듯이 튀어 들어왔다. 뒷사람들이 민 것 같았다. 이어서 대여섯 명이 들어오더니 “초대소에 관한 의견을 들으러 왔다”며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장닝은 공군복장을 한 청년이 방약무인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았다. 이들이 예췬에게 말한 소감도 부인네들의 것과 비슷했다. 린리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췬은 장닝을 경극공연장으로 데려오게 했다.

장닝을 만나고 돌아온 예췬은 신경질을 부렸다. “당돌하고 키가 너무 크다. 난징으로 쫓아버려라.” 그래도 혹시 몰라서 린리궈에게 물었다. “흥미 없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린리궈는 누이 리헝(立衡)에게 달려가 속내를 털어놨다. 다음 날 장닝은 젊은 남녀의 방문을 받았다. 청년은 구면이었다. 베이징의 날씨와 음식, 여러 나라를 다니며 공연하던 얘기로 꽃을 피웠다. 중공당사(黨史)를 공부했느냐고 묻고는 너나 할 것 없이 파안대소했다. 청년도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장닝이 정치적인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리헝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예췬은 린뱌오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한밤중에 군인들이 장닝을 데리러 왔다. 사진에서만 보던 린뱌오는 병색이 완연했다. 희다 못해 푸른 빛이 돌았다. 장닝을 보더니 씩하고 웃었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말라”면서 또 웃었다. 장닝도 웃었다. “웃음과 말이 없는 사람”이라는 풍문이 생각났다. 잠시 후 린뱌오는 일어났다. 휘청거리며 문 앞까지 가더니 장닝을 향해 돌아섰다. 아주 계면쩍은 웃음을 짓고 사라졌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장닝은 온몸에 힘이 빠졌다.

린뱌오는 불세출의 명장이었다. 전장과 정치판에선 교활하고 총명했지만 평생 그를 지배한 것은 현실에 대한 무관심이었다. 뭐든지 피하려고 했지 나서려 하지 않았다. 생활방식도 전통적인 정통파 중국인이었다. 문화혁명 기간 동안 힘이 따르지 못해 착오가 많았고 마음에 위배되는 일을 많이 저질렀지만 아들의 결혼문제는 린뱌오답게 세 차례 웃음으로 처리했다.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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