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 '정크본드' 신세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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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때 미국 전화시장의 80%를 장악했던 AT&T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약 130년전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창업한 회사라고 해서 일명 ‘엄마 벨(Mohter Bell)’이다.이제는 자사에서 떨어져나간 ‘아기 벨(Baby Bell)’들에 이리저리 치여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푸어스(S&P)는 3일(현지시간) AT&T의 장기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BB+)으로 떨어뜨렸다.이 회사 채권은 부도날 가능성이 크니까 투자 때 각별히 주의하라는 뜻이다. 무디스도 지난달 30일 같은 조치를 취했다.

미국 통신업계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탓에 AT&T의 실적 감소세가 예상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런 우려는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AT&T의 지난 2분기 순이익은 1억800만달러(주당 14센트)로 지난해 동기(5억3600만달러, 주당 68센트)의 3분의 1로 크게 줄었다. 매출도 88억달러에서 76억4000만달러로 13% 감소했다. 이 회사는 발행 회사채와 대출 등으로 110억달러의 빚을 졌는데 신용등급이 떨어져 이자부담이 늘어날 판이다.

AT&T에 지난 4월 8일은 수모의 날이었다. 미 증시의 30개 우량종목으로 구성되는 다우존스지수 편입종목에서 빠지고 그 자리를 자사에서 떨어져 나간 버라이존에 내준 것이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AT&T의 쇠락은 거대 독점기업으로서 외부환경 변화에 둔감했던 탓"이라고 지적했다. 미 대법원은 1984년 AT&T의 시장독점이 심하다고 보고 회사 분할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지역별로 시내전화 사업을 맡은 퍼시픽벨 등 7개의 베이비 벨이 분리돼 나왔고, AT&T는 장거리 및 국제전화 사업과 통신장비 제조만 맡게 됐다. 96년엔 컴퓨터 사업을 떼어냈다. 세계 통신문명 발달의 산실인 벨연구소와 통신장비 제조업을 묶은 루슨트테크놀로지를 분사한 것도 이 무렵이다.

AT&T가 전통 유선전화 사업에 계속 힘쏟는 동안 세상엔 무선통신과 인터넷 전화가 등장했다. 설상가상으로 96년 미 정부는 그동안 AT&T가 큰 재미를 봤던 장거리전화 시장마저 베이비 벨들에 개방했다.

AT&T는 아직도 450만명 가량의 개인 시내전화 가입자와 3000만명의 장거리전화 고객을 확보하고 있지만 고객수는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달 하순부터 미주리 등 10여개 주에서 개인고객을 새로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T&T는 96년 장거리전화 시장을 양보하면서 베이비 벨의 지역전화 네트워크를 싸게 활용하는 혜택을 누려 왔다. 그런데 최근 법원 판결로 더 이상 그런 혜택을 볼 수 없게 되자 신규 영업을 중단한 것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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