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내달 무대올리는 창작발레 '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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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순수예술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어서는 안됩니다. 예술이란 결국 인간이 죽음을 향하는 시간을 잊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 "

원로 무용평론가 박용구씨의 말처럼 진정한 예술은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재미와 예술성, 이 양쪽을 모두 충족시키는 일은 어떤 예술가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립발레단 (단장 최태지) 이 이 어려운 일을 벌이고 나섰다. 싸구려가 아니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한 한국적 발레 레퍼토리 개발을 목표로 2부 16경 창작발레 '바리' 를 11월 6일부터 8일까지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리는 것. 02 - 274 - 1172. 왕족으로 태어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지는 바리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비록 한국적인 소재를 차용했지만 '한국성' 보다는 철저하게 '발레' 에 초점을 맞추었다.

74년 '지귀의 꿈' 에서부터 90년 '고려애가' 에 이르기까지 국립발레단은 모두 6편의 한국적 창작발레를 선보여왔다. 하지만 모두 초연으로 그 생명을 다하고 말았다.

한국성에 너무 집착하다보니, 토슈즈를 신고 한국 춤사위를 추는 어설픈 모양이 되어 관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안무를 맡은 최단장은 이런 실패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정통 발레를 기본으로 삼겠다" 고 말한다.

음악과 의상에서 한국미를 보여주는 대신 춤은 발레와 현대무용 테크닉을 위주로 해 세계무대에 내세울만한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발레로 만들겠다는 야심이다. 이를 위해 뉴욕에서 인정받았던 현대무용가 안성수씨의 힘을 빌었다.

발레에서 안무만큼 비중이 큰 발레음악은 한국성과 대중성을 가미한 작품세계로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이건용 교수가 작곡했다.

80년대 몇편의 현대무용음악 작곡으로 주목받았던 이교수지만 발레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교수는 "정련된 서양예술인 발레를 우리 고전과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현대적 감각과 대중에의 호소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고 밝혔다.

4회 공연은 최승한 지휘의 코리아 심포니가 반주를 하지만 부분부분마다 장구와 꽹가리 등 전통악기를 사용한다. 피날레 역시 굿거리장단으로 마무리했다.

이외에 실질적인 한국 유일의 창작 전막발레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는 유니버설발레단 '심청' 의 대본가인 박용구씨가 대본과 연출을 맡았다.

무대는 무대미술 1인자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윤정섭 교수, 의상은 뮤지컬 '명성황후' 로 뉴욕에서도 호평받은 김현숙씨가 맡았다.

닫힌 공간인 극장에다 우리의 열린 공간을 보여주는 길놀이 형식을 조화시키기 위해 발레무대로는 처음으로 회전무대를 사용했다.

의상은 명성황후의 화려한 '군살' 을 모두 빼고 인체 흐름을 보여주는 곡선미를 강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2년여의 준비기간을 통해 선보이는 이번 창작발레가 얻게될 반응에 따라 한국 창작발레의 앞날이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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