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자금규제 안팎]재계“미국 빅딜개입 의도”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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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국제통화기금 (IMF) 추가출자법에 끝내 '한국 조항' 이 들어가고 말았다.

IMF 자금을 지원받는 나라가 한국만이 아닌데도 미 의회가 유독 한국만을, 그것도 특정 6개 산업까지 법에 명시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한국은 IMF와 협의가 끝나도 미 재무부가 의회에 '확인서' 를 써주지 않으면 IMF자금을 쓸 수 없게 됐다.

IMF의 의사결정 과정상 '대주주' 인 미국은 한국에의 자금집행을 얼마든지 가로막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문제가 당장 불거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지만 미 의회가 한국 정책에 대해 광범위한 불신과 의혹을 갖고 있다는 게 문제다.

우리는 거듭 부정하고 설득해도 여전히 그들은 "한국이 구조조정을 한다지만 자동차.철강.반도체 등은 종전 그대로이고 이는 '지원' 의 결과가 아니냐" 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티모시 가이스너 미 재무차관도 최근 우리측 관계자와 미 의회보좌관들이 모인 토론자리에서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은 전체적인 생산능력과는 관계없는 것이 아니냐" 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번 법안은 물론 미 업계의 로비 결과다.

미 의회는 입법 명분인 이른바 '도덕적 해이' 보다 미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경쟁관계' 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이 법은 운용에 따라 매우 고약해질 수 있다.

예컨대 6개 업종의 대부분이 빅딜의 대상이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빅딜과 함께 거론돼온 '지원조건' 에 대해 미 의회와 업계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우리 업계 반응 = 전경련 강호용 산업정책팀장은 "미국이 자국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분야에서 사전에 한국 기업들의 자금지원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미에서 이 법을 통과시킨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 예상되는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국내 기업들의 구조조정 과정에 은행이나 정부의 지원 등에 대해 미국쪽에서 각종 압력을 할 여지가 있어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고 말했다.

현대와 LG간의 빅딜이 한창 논의되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 합병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의 관계 등 각종 부수적인 조건에 미국측이 시비를 걸 소지가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자동차분야는 현대가 기아자동차의 인수를 놓고 채권단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제약을 받을 소지가 있게 됐다.

특히 현대의 기아인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종금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에 미국측이 개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 = 김수길 특파원, 이수호.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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