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파란대문' 을 내놓은 김기덕감독 (38) 은 그 왕성한 생산력으로 우리를 탄복케한다.
96년의 데뷔작 '악어' 에 이어 '야생동물 보호구역' 등 매년 한 편씩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온 그가 자기 말대로 '영화판에 아무런 연고가 없던 상황' 에서 이처럼 지속적으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각별한 능력이다.
초저예산으로도 '헝그리 정신' 으로 '뚝딱' 영화를 만들어 내는 그의 작업방식은 가히 '게릴라적' 이라고 할 만하다.
'파란대문' 도 영화진흥공사의 판권담보 융자 3억원만으로 제작을 완료했다.
이처럼 '속성' 으로 제작되지만 그의 영화들에는 일관된 주제의식과 형식상의 특징이 녹아 있다.
세 작품을 살펴보면 모두 어김없이 '물' 이 등장한다.
'악어' 는 한강, '파란대문' 은 포항 바닷가가 주공간이다.
프랑스에서 찍은 '야생동물…' 에서 주인공들은 바닷물에 빠져 허우적댄다.
물이 갖는 일반적인 이미지가 정화 (淨化) 내지 속죄라는 걸 감안하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 세계는 '악어' 와 '야생동물' 들이 아웅다웅 거리는 '보호구역' 과 '새장' ( '파란대문' 에 등장하는 여인숙의 이름) 같은 곳이라는 것, 따라서 이 세계는 사랑과 우정, 화해를 통해서만 구원될 있다고 본다.
'파란대문' 도 진아 (이지은) 라는 이름의 창녀와 동갑내기 여대생 혜미 (이혜은) 사이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다룬다.
파란대문을 가진 '새장여인숙' 이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거주하는 두 여인. 몸을 팔면서도 순박한 심성을 잃지않는 진아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멸과 폭력을 묵묵히 받아낸다.
반면 '육체적 순수' 에만 집착하는 혜미는 사랑과 용서에는 둔감하다.
그러나 진아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 혜미는 그녀 대신 '모르는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희생' 을 함으로써 '속죄' 와 '정화' 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파란대문' 은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 70년대 유행했던 '호스티스 영화' 의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살아숨쉬는 캐릭터를 만들겠다' 는 감독의 의도는 제대로 살지 못했다.
전작들에서 두드러졌던 스토리의 빈약함이나 선과 악에 대한 이분법적인 설정들은 그가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험난하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미술을 공부한 감독답게 '파란대문' 에는 영상미가 뛰어난 장면들이 많다.
특히 주인공들의 환상을 통해 표현되는 부분들은 감독의 영화적 표현력이 숙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1일 개봉.
이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