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명인전서 도전기 사상 3패 첫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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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난 15일 조치훈9단과 왕리청 (王立誠) 9단이 대결한 일본 명인전에서 도전기 사상 처음으로 나타난 3패는 (본지 16일자 18면 보도) 보통의 사활이 걸린 3패와는 달리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끝내기 상황이 빗어낸 특이한 3패였다.

영원히 순환하며 동형반복을 계속하는 3패와 장생 (長生) 은 무승부가 불가피하여 바둑룰의 최대약점으로 꼽히고있다.

그러나 이 3패는 어떤 면에서 일본 바둑을 중흥시킨 일등공신기도 했다.

바둑사에서 3패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16세기 중엽 일본 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패주였던 오다 노부나가 (職田信長) 는 혼노사 (本能寺) 란 절에 묵으면서 당대 최고수인 중 니카이 (日海) 와 니겐보 (利玄坊) 의 대국을 감상한다.

이 대국에서 공교롭게도 3패가 나와 바둑은 중단되었고 두사람은 절을 떠난다.

그런데 직후 오다의 부하가 반란을 일으켜 혼노사는 화염에 휩싸였고 오다는 살해되고 만다.

니카이는 정권이 바뀐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목숨을 걸고 오다의 시신을 모아 장례를 치러준다.

때마침 오다의 직계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豊信秀吉) 는 전격적으로 패권을 되찾은 뒤 니카이의 인품과 용기에 감복하여 그를 군사로 등용한다.

전국의 대회를 열고 입상을 한 니카이등 고수들에게 국록을 주는 제도도 만든다.

이어 도꾸가와 (德川) 막부에서는 명인기소를 설치하고 바둑을 더욱 장려하니 이로서 명인기소 쟁취를 위한 바둑 4가문의 쟁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 4가문중 우두머리인 본인방가의 시조가 바로 니카이다.

그러니 3패는 오다의 목숨을 앗아간 불길한 것이지만 한편으로 일본바둑을 일으킨 공로자이기도 한 셈이다.

3패는 도전기가 아닌 대국에선 여러차례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3차례 나타났다.

장생은 중국의 고전 묘수풀이집인 현현기경에 소장생세 (小長生勢) 와 대장생세 (大長生勢) 두 문제가 나온다.

극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묘수이기에 장생은 길한 것으로 되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전에선 나오기 불가능하다고 여겨져왔는데 5년전 일본 본인방전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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