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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국방장관 수홈리노프 러시아 참패, 왕조 멸망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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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914년 8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러시아 국방장관 블라디미르 수홈리노프(사진左·1848~1926)가 이끄는 러시아군은 전쟁 초기부터 독일군에 패배를 거듭했고, 로마노프 왕조는 1917년 레닌 혁명으로 종말을 고했다. 수홈리노프는 1877년 터키전쟁에 젊은 기병장교로 참전해 혁혁한 공을 세워 성 조지 십자훈장을 받았다. 그는 이 전투에서 얻은 군사지식을 영원한 진리로 믿었다. 창검 대신 ‘화력(火力) 기술혁신’에 관심을 갖는 참모들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그는 ‘현대전’이란 표현을 들으면 거북한 느낌이 든다며 “전쟁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1913년에는 ‘화력전술’이라는 이단적 교리를 가르치겠다고 고집하는 교관 다섯 명을 참모대학에서 파면시켰다.

1906년 시골 주지사의 23세 된 아내에게 반한 58세의 수홈리노프는, 음모를 꾸며 날조된 증거로 남편을 이혼시켜 쫓아내고 이 아름다운 이혼녀를 네 번째 부인으로 맞았다. 그는 어린 아내와의 신혼 재미에 푹 빠졌다. 아내는 파리에서 의상을 구입하고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성대한 파티를 즐겼고, 수홈리노프는 아내의 사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주식시장 내부 정보를 이용해 엄청난 수익을 얻어 6년 동안 은행에 70만 루블을 예금했는데, 이 기간 중 그의 봉급 총액은 27만 루블이었다.

이런 사람이 1908년부터 1914년까지 러시아 국방장관을 맡고 있었다. 차르(황제)의 변덕에 좌우되는 장관 자리를 그는 아부와 재치, 그리고 차르의 측근인 요승(妖僧) 라스푸틴과의 친분을 통해 따냈다. 그는 부하들에게 일을 맡길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낡은 이론과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면서 창검이 총알보다 우월하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고, 포탄·소총·탄창을 증산하기 위한 공장 설립에 노력을 쏟지 않았다.

서방 군대가 포 1문당 2000~3000발의 예비포탄을 확보한 데 비해 러시아는 포 1문당 850발의 포탄으로 1차 세계대전을 시작했다. 중포(重砲) 부대의 경우 독일은 381개 부대, 러시아는 60개의 부대를 보유했다. 수홈리노프는 전쟁은 화력의 대결이 되리라는 경고를 무시했다. 얼마 전 한국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가 무방비 상태로 디도스(DDoS) 공격에 당했다. 미국·일본 같은 선진국은 전체 IT 예산의 10%를 보안에 투자하지만 한국은 1%에 불과하다고 한다. 혹 우리 안에도 수홈리노프가 있는 건 아닐까.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