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金주역지금은] 낯선 사업과 레슬링 한판 "金따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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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선수에서 보험 세일즈맨을 거쳐 이제는 사업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김원기 씨가 ‘심자성 마을회’의 전기계측제어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에 대회 첫 금메달을 안겨준 김원기 씨(45). 그는 은퇴 후 16년간 보험회사에서 보험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다가 지난해부터는 사업가로 제3의 도전을 하고 있다.

김 씨는 86년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삼성생명 레슬링 선수단에서 은퇴했다. 체육교사, 유학, 사업 등을 놓고 고민하던 김 씨가 선택한 것은 예상 밖의 보험 세일즈맨. 김 씨는 "스포츠계를 떠나 일반인으로서 사회의 깊이와 어려움에 부딪혀 보자고 새로운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 호남지역본부 총무과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김 씨는 "처음에 고생 많이 했다. 낯선 용어, 생소한 보험 약관, 보험에 대한 편견,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레슬링 훈련보다 더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91년 제주도 신제주영업소장으로 발령받아 본격적인 보험 세일즈를 시작했다. 그는 "첫번째 부임지인데다 고객들이 소박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며 "시장의 상점 주인들이 첫 번째 고객들이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김 씨는 삼성생명에서 교육차장을 마지막으로 2001년 10월 퇴직했다. 김 씨는 "선수 출신으로서 경쟁력에 한계를 느꼈다. 게다가 보증을 잘못 서는 등 일이 꼬여 목돈이 필요해 16년간의 보험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후 1년 6개월 동안 '백수'생활의 시련을 겪으며 거의 빈털터리가 됐다. 부모님, 아내에게 미안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괜히 위축됐다. 선배가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 '십자성 마을회'의 강대일 사장과의 인연으로 '제3의 인생'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직책은 영업 상무이사. 월남참전 상이용사들을 위한 보훈단체 성격인 '십자성 마을회'에서 발로 뛰어다니며 지방자치단체 대기업 등에 전기계측제어기기를 납품하고 있다.

김 씨는 "봉급생활과 사업은 또 달랐다. 인적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하느라 또다시 고생이었다. 항상 겸손 믿음 신의 책임 등을 생각하며 사업가로서 필요한 능력을 깨우쳐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씨는 소리없이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아직 2세가 없는 김 씨는 고향인 전남 함평 출신의 4명의 '양아들'이 있다. 모두 고아 출신의 레슬링 선수. 2명은 97년부터, 2명은 지난해부터 후견했는데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과 고등학생으로 성장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매달 용돈과 물품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지난 5월 어버이날에 4개의 꽃바구니를 배달받고서 가슴이 뭉클했다.

6년 전부터 틈나는 대로 안양교도소와 영등포교도소에서 강연을 한다. 입소문이 나면서 2년 전 MBC <길거리 특강>에 출연한 이후 이곳저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온다. 사업하랴 강연하랴 바쁘다.

그는 꿈을 갖고 있다. "존경받는 사업가로서 돈을 많이 벌어 장학 재단을 만들고 싶다. 양아들도 10명까지 두고 싶다." 며 사심없는 큰 희망을 밝혔다.

일간스포츠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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