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배 '북한기행 작품전']방북감동 '생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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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넓적한 얼굴에 번지는 너털웃음이 까탈스런 예술가라기보다 이웃집 아저씨같은 황창배 (51) 화백. 그런데 웬일인지 그의 별명은 '한국화단의 테러리스트' 이다.

한국화 격식을 깬 작품세계 때문에 붙여진 애칭이다.

먹과 종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색과 재료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한국화 작가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유희적인 인물상을 단순한 선으로 척척 그려내는 그이기에 별명이 그럴 듯하게 느껴진다.

그런 그에게도 처음 본 북한의 풍경은 사실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 2년만에 갖는 '북한기행작품전' 은 구상의 세계다.

선화랑에서 10월 10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중앙일보 북한문화유산조사단 일원으로 지난 겨울 15일간 방북해 북한의 이곳저곳을 담은 스케치와 이를 다시 화폭에 옮긴 대작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02 - 734 - 0458. 평양시가와 그 부근, 개성 일대, 황해도의 명산 구월산, 박연폭포가 흐르는 정방산, 대동강변의 을밀대…. 상상속에서만 아른거렸던 북녘 산하는 물론 옥류관 냉면전문점.평양 단고기집까지 북한의 모습이 정겹게 담겨 있다.

'성불사' 작업처럼 큰 작업도 있지만 소품이 대부분이다.

잠깐 본 풍경을 크게 그리는 것은 풍선 부풀리기식 쇼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흥적이고 대담한 붓질, 먹과 수채.아크릴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재료 선택은 2년전의 황창배 그대로이다.

하지만 대상의 섬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묘사력은 새삼 그의 파격 뒤에 숨겨진 실력을 드러내 보여준다.

많은 작가들이 구체적인 형상에서 출발해 점차 비구상의 세계로 접어드는 점을 감안할때 황씨의 구상 작업으로의 유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황씨는 "현대 한국화에 구심점이 없는 요즘 구상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던 차에 이번 방북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며 "내가 기본도 없이 막 휘둘런대는 줄 아는 젊은 작가들에게 모처럼 구상력을 보여주게 되어 부담스럽기보다는 오히려 행복하다" 는 도발적인 말도 했다.

황씨는 "짧은 일정이 결려 속시원하게 맘껏 못 그린 답답함, 이로 인한 표피적인 느낌이 자꾸 들어 속시원치 않은 면도 있다" 고 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방북 기간 내내 흥분상태" 였다고 표현한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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