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대출 이름빌려줘 낭패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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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A씨는 최근 은행에서 3천만원을 대출받아야 하는데 이름을 빌려달라는 직장 동료의 부탁을 들어줬다가 신용불량거래자 신세가 됐다.

매일 보는 처지인데 야박하게 거절하기가 어쩐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료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히고 대출을 받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안전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얼마전 동료가 이자를 연체하기 시작하자 A씨는 은행으로부터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게 됐다.

담보로 잡힌 부동산 값이 떨어졌기 때문에 처분후에 모자라는 돈을 대신 갚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A씨는 은행으로부터 신용불량거래자 낙인까지 찍히게 됐다.

B씨는 C씨 소유의 집을 사들인 후 소유권 이전 등기를 끝냈다. 은행에 담보로 잡혔던 집이란 게 마음에 걸렸지만 부동산을 판 돈으로 대출금을 갚았다는 C씨의 말을 믿고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C씨는 소유권 이전 등기 이후 B씨 몰래 추가로 돈을 빌린 뒤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하자 은행은 이 부동산을 경매처분하겠다고 나섰다.

B씨는 "C씨가 집 판돈으로 대출을 다 갚았는데 무슨 말이냐" 며 펄쩍 뛰었지만 당초 부동산에 설정됐던 저당권의 성격이 C씨의 다른 대출금 및 연대보증채무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는 은행의 설명에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최근 이처럼 은행대출과 관련된 금융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부도와 개인파산이 늘면서 이름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잘못 섰다가 피해를 보는 이른바 'IMF형 금융분쟁' 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이 개인대출을 꺼리면서 남의 이름을 빌려 돈을 쓰는 일이 부쩍 늘어나고, 부동산 담보를 잡히지 않으면 그나마 대출받기도 어려워진 현실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특히 A씨처럼 이름을 빌려달라는 직장 동료의 부탁을 들어줬다가 돈도 대신 물어주고 신용불량거래자 신세가 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 금융기관에 담보로 잡혔던 부동산을 살 때는 저당권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아 낭패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은행감독원은 이런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우선 본인이 대신 갚을 생각이 없는 한 절대로 다른 사람의 대출에 이름을 빌려주지 말라고 권고한다.

명의대여자로서 대출 약정서에 서명했다 하더라도 돈을 갚을 책임은 원칙적으로 약정서에 서명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다.

또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된 부동산을 살 때는 반드시 해당 금융기관을 찾아가 필요한 절차를 서면으로 밟아야 한다.

특히 부동산에 설정된 저당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서면으로 확인해야 한다.

또 소유권 이전등기를 마친 후에도 해당 은행에 부동산을 판 사람 앞으로 추가 대출 취급을 하지 못하도록 서면으로 요청해야 한다.

이밖에 부동산을 팔 때도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경우 대출금을 끼고 처분하는 사례가 많은데 이때 사는 사람에게 대출금 통장을 넘겨주면서 반드시 채무자 명의변경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는 사람이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

은행감독원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8월말까지 처리된 금융분쟁은 모두 2천6백98건. 지난해 동기 (1천7백92건)에 비해 50.6%나 늘어났다.

이 가운데 여신 관련 분쟁은 8백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백51건)에 비해 1백44% 증가했으며, 담보.보증관련 분쟁도 9백15건으로 지난해 동기 (5백39건) 보다 69.8% 많아졌다.

박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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