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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쌀 시장 조기 개방이 해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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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농민단체들이 정부와 함께 쌀 시장을 조기에 개방(관세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조기 관세화는 2014년까지 유예된 쌀 관세화 시점을 앞당겨 미리 시장을 열자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판단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협정에 따라 쌀 시장 개방을 유예받되 해마다 최소시장접근(MMA)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이 의무수입물량(TRQ)이 매년 2만t씩 늘어나 올해는 30만t을 넘어서고, 2014년에는 40만t에 이르게 된다.

쌀 조기 관세화는 무엇보다 농민에게 도움이 된다. 우리는 2015년부터 쌀 시장을 반드시 개방해야 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또 관세화를 단행하면 그 시점에서 TRQ 물량이 동결된다. 따라서 예정보다 5년을 앞당겨 내년에 쌀 관세화를 하면 TRQ 물량을 해마다 10만t이나 줄일 수 있게 된다. 쌀 재고가 늘면 생산자인 농민들도 어렵게 된다. 여기에다 TRQ 물량 동결로 해마다 절약되는 1300억원 정도는 쌀 농가를 지원하는 데 쓸 수 있다. 쌀 수입과 저장·관리에 필요한 정부의 재정부담도 덜 수 있다.

국내외 여건도 조기 관세화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원자재 파동으로 현재 국제 쌀 가격은 t당 1000달러를 웃돌고 있다. 200%의 관세만 매겨도 80㎏들이 수입 쌀 한 가마는 30만원에 육박한다. 한 가마에 20만원 선인 국내 쌀보다 훨씬 비싼데 누가 사먹겠는가. 중국산 쌀이 쏟아져 들어오거나 국제 쌀값의 폭락이 걱정이라면 종량세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를테면 종가세 200% 대신 ‘㎏당 2200원’ 같은 방식으로 종량세를 매기면 수입 쌀 가격은 거의 고정돼 버린다. 국내 농민들을 안심시키고 국산 쌀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다.

물론 개방에 주저하는 농민들의 불안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쌀은 국내 농가의 71%가 생산하고 농업 소득의 절반을 차지한다. 또 시장은 한번 개방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 국제 쌀 시장은 수급이 약간만 무너져도 변덕을 부리는 ‘얇은 시장’이다. 그러나 1999년 4월 종량세를 도입해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한 일본의 경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다음 해에 관세를 물고 일본에 수입된 외국 쌀은 98t에 불과했다. 그것도 상업용으로 수입된 게 아니라 농업 관련 연구소들이 시험이나 시식용으로 들어온 게 전부였다.

농업 보호파들은 ‘쌀 시장 개방’이란 소리만 들어도 자신들의 종교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 집단시위를 하고 할복을 시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그렇게 결사적으로 보호막을 쳐주었던 국산 땅콩과 참외는 결국 몰락하고 있지 않은가. 이에 비해 멸종을 우려했던 참다래는 뉴질랜드산 키위와 공동 마케팅을 벌일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관세를 20%까지 내린 닭고기·돼지고기도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농민들이 개방과 도전을 맞아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