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반가울때 섭섭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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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앙일보에 대한 독자들의 속마음은 어떤 것일까. 반갑고 고맙고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가 하면 섭섭하고 빕고 속에 안 차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항상 독자제일주의를 펴온 중앙일보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자리를 마련했다.

중앙일보의 창간 33주년을 축하한다.

정치학자로서 중앙일보를 볼 때 제일 먼저 느끼는 장점은 진보적 경향으로부터 극우적 색깔에 이르는 주요 일간지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열린' 편집방침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도적이면서도 다양한 성향을 지닌 외부 필자들의 시론이 잘 보여준다.

내부 칼럼 역시 수준이 고르고 국내 정상급이라고 생각된다.

낡은 냉전논리에 휩싸이기 쉬운 최근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에 대한 전향적인 보도자세를 견지하고 북한취재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것은 높이 살 만하다.

전문기자제도를 도입해 심도있는 기사들을 제공하는 것도 또다른 매력이다.

신문의 중요한 기능이 정보의 전달에 있다고 할 때 중앙일보가 제공하는 정보는 그 양과 질.폭 모두에 있어서 뛰어나다.

중앙일보의 장점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읽기가 쉽다는 점이다.

즉 기사의 문체가 고루하지 않고 알기 쉽도록 쓰여 있어 물 흐르듯 쉽게 읽히고 편집 역시 눈에 잘 들어오게 돼있다.

그러나 '공정성' 에선 아직 문제가 많다.

대부분의 언론이 그러했던, 독재정권의 언론통제 정책에 의한 왜곡보도는 지난날의 일로 치더라도 중앙일보의 논조에는 경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은 희생돼야 한다는 '경제논리' 가 아직 지나치게 내면화돼 있고 기업과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측면이 강하다.

최근의 경제위기와 관련해 재벌들의 책임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노동자들의 생존권 사수를 위한 파업을 경제를 망치는 행위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현대자동차 파업문제도 1만명에 가까운 자진퇴직 등 노동자들의 희생과 자구노력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택해야 했던 배경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정부의 중재노력을 일방적으로 비난한 것도 문제다.

즉 공권력 투입은 정부개입이 아니고 정부의 평화적인 중재노력은 정부개입이어서 부당하다는 기이한 논리다.

결국 '소외세력' 과 '사회적 약자' 의 목소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손호철 교수(서강대.정치학)

중앙일보를 구독하는 즐거움을 꼽으라면 아마도 먼저 한글 위주의 편집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기성신문으로서, 또 중도보수지임을 표방하는 신문으로서 과감히 한자를 줄이고 한글을 주로 사용하는 것은 상당히 신선한 발상이었다.

벌써 신문을 보고 싶어하는 우리집 초등학교 4학년짜리에게도 재미있는 신문이 되었으니 말이다.

제일 먼저 섹션화를 시도한 것 역시 중앙일보를 보는 즐거움이었다.

아침이면 세사람이 달려들어 신문을 찾는 우리집 같은 경우 그로 인해 별 큰 분쟁 (?) 을 치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더구나 신문을 페이지별로 가지런히 정돈해야만 하는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중앙일보를 병독지로 구독해야만 하는 씁쓸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모든 신문이 그 소유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그 소유주가 한 개인의 일가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의 흥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힘을 가진 거대 재벌임을 생각할 때 나는 중앙일보의 보도를 1백% 신뢰하지는 못한다.

과연 중앙일보를 만들어가는 종사자들이 그들에게 생계를 제공하는 소유 집단의 이익을 해쳐가면서까지 우리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개인의 양심이나 윤리의식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나에게는 많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신뢰하는 중앙일보의 지인들이 몇몇 있다.

그러나 가끔 그들과 헤어져 나는 생각하곤 했다.

그들은 과연 그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으며 때로는 어디까지 고통스러울 수 있을 것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영어 참고서 첫 페이지에는 오래된 격언이 하나 나온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같은 것 말이다.

실제 지난 세월 우리의 펜들은 칼들과 싸우고 피흘린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이제 20세기가 저물어가는 이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는 새로운 비교급을 가진 숙어를 하나 탄생시켜야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펜은 자본보다 강하다' 라는.

공지영씨(소설가)

나는 중앙일보 창간독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중앙일보와 '월간중앙' 을 구독해 왔다.

중앙일보는 새로운 것을 많이 추구하는 신문이다.

국내 최초로 컬러 지면을 도입했고 향기나는 광고, 전문기자제도, 섹션화, 48면 발행, '말말말' , 기동성 있는 여론조사 등…. 중앙일보와의 개인적인 인연도 깊다.

71년 교련반대 주동자로 각 대학 동료들과 함께 제적돼 강제징집으로 철책근무를 하고 있을 때 대학시절의 집시법 위반이 군부대로 이첩돼 재판을 받았다.

육본에서 재판을 받고 군복을 입은 채 중앙일보를 찾아가 그 내용을 전했는데 다음날 사회면 5단 크기로 기사화됐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물론 부대내에서는 발칵 뒤집혔지만 결국 기사화 덕분에 무죄가 됐다.

나는 중앙일보를 보면 2면에 실린 고은 선생의 '시가 있는 아침' 을 꼭 읽는다.

거대도시의 톱니바퀴 같은 일상생활에서 시는 나의 삶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데 큰 힘이 된다.

문화면의 '책속으로' '신작을 찾아서' 는 직접 책을 읽을 기회가 적은 나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

'말말말' 은 우리 사회의 흐름을 아주 짧은 말 몇마디로 응축시켜 놓아 신문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환경기사에 대해서는 너무 인색한 것 같다.

우리 환경련 자료정보센터에는 국내 일간지 전체의 환경기사 스크랩이 매일 오전 11시면 나온다.

중앙일보는 2년 전부터 환경기사가 확 줄었다.

우리 단체는 국민들에게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환경개선 실천을 도모하는 캠페인을 많이 편다.

중앙일보를 포함한 각 일간지 신문기자들이 취재하지만 다음날 신문을 보면 중앙일보엔 사진이 꼭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우리 활동가나 회원은 중앙일보에 불만이 많다.

한번은 환경련에서 프랑스 핵실험 반대 캠페인을 했는데 중앙일보에서도 취재를 왔지만 기사가 안나고 며칠 후 AP발 외신사진으로 우리 단체 캠페인이 보도된 것을 보고 실망이 컸다.

만약 중앙일보가 평생독자제도를 도입한다면 내가 제일 먼저 신청하고 항상 애정어린 비판도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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