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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 눈길 모은 드라마 ‘여로’ 힘없고 어눌한 서민 위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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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그 옛날 옥색 댕기…’ 이미자의 노래가 흐르면 사람들의 발길이 바빠졌다. 저녁 7시30분, 거리엔 자동차들이 자취를 감췄고 부엌에선 밥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1972년 여름엔 해수욕장마저 저녁만 되면 텅텅 비었다. KBS 일일 연속극 ‘여로’를 보러 TV가 있는 식당으로 모두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추산하는 당시 시청률은 70%대. 아이들 사이에선 “땍띠야 밥 줘”라는 영구(사진 中·장욱제 역)의 바보 흉내를 못 내면 바보 소릴 들었다. ‘영구식 제기차기’와 그의 기계충 머리도 화제였다. 집 나간 며느리가 드라마를 보고 돌아왔다며 방송국에 찾아와 분이(右·태현실 역)의 손을 잡고 울던 할머니도 있었다. 영구가 아내와 재회하는 극적인 장면에선 온 국민이 흐느꼈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TV가 있는 이웃집에 ‘여로’를 보러 갔다가 그 집에서 사나운 개를 푸는 바람에 쫓겨난 설움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분이의 못된 시어머니 역할을 했던 박주아씨는 미움을 톡톡히 받았다. 그해 태현실(본명 태복실)씨와 박씨는 함께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 가벼운 상처를 입은 태씨에겐 사람들이 몰려 위로하는데 꽤 큰 부상으로 누워 있던 박주아씨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녹화 날에 공수부대원 7명이 들이닥쳐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시어머니, 달중이(김무영), 시누이(권미혜) 나와!”

고 이남섭씨의 이 작품(극본·연출)은 72년 4월 3일 첫 방송을 탔고, 뜨거운 인기에 211회(원래는 90회)까지 늘어져 엿가락 편성의 원조가 됐다. 이야기는 일제시대 술집에서 일했던 분이가 최 주사집의 모자라는 도령과 결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호된 시집살이에다 그녀를 짝사랑하는 달중이의 흉계까지 겹쳐 번번이 괴로움을 당한다. 분이는 과거 이력이 들통 나는 바람에 시어머니에게 쫓겨나지만 6·25전쟁이 터진 뒤 피란지 부산에 큰돈을 모은다. ‘여로’는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불굴의 여성상을 담아 공감을 불렀다. 금실 좋은 부부였던 장욱제와 태현실은 ‘천생연분’인 듯 생년월일이 같다고 한다.

90년대 심형래씨는 ‘영구’를 재현하여 인기를 모았다. 태현실씨는 지난해 18대 총선에서 평화통일가정당 연설자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여로’는 73년과 86년 영화로 만들어졌고, 2000년에는 악극으로도 상연됐다. 지금 우리가 ‘여로’를 떠올리는 것은 모자라고 괴로워도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그 시절 부부의 모습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이상국(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