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아버지보다 못한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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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해 가을 박정희의 18년 집권은 흔들리고 있었다. 붕괴의 화약 냄새는 여름부터 나기 시작했다. 10월 4일 드디어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여당이 신민당 총재 YS를 제명한 것이다. YS는 뉴욕 타임스 회견에서 “미국은 박정희에 대한 지지를 끊으라”고 주장했는데 박정희는 사대주의적 행태라고 격분했다. 신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단상을 점거했고, 여야는 심한 몸싸움을 벌였으며, 결국 여당은 146호실에서 제명안을 가결했다. 신민당 의원 66인은 9일 후 사퇴서를 제출했다. 3일 후인 10월 16일 YS의 고향 부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터졌다. 역사적인 부마(釜馬·부산과 마산)사태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정권의 종말(10·26)까지는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YS를 제명하지 않았더라면 신민당의 의원직 사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정권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역사는 ‘의원직 제명’에서 굽이치고 ‘의원직 사퇴’에서 요동쳤던 것이다.

세대로 치면 지금의 민주당은 70~80년대 신민당의 아들뻘이다. 아버지의 시대엔 권력의 무법자 검객이 난무했고 보도(寶刀) 세 자루가 야당과 국민을 지키는 소중한 무기였다. 그러나 87년 민주화가 시작되고 98년 여야 권력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활극시대는 사라졌다. 검객들이 떠난 자리엔 학생들이 ‘선진화’ 수능시험을 보고 있다. 세월이 바뀌었으니 아버지의 칼 세 자루는 가보(家寶)로 장롱 깊숙이 모셔져야 한다. 그런데 공부에 자신이 없는 아들이 연필을 버리고 칼을 다시 쥐고 있다. 치열한 수능시험장에서 칼은 어색한 장난감이다. 아버지의 당부는 시험공부인데 아들은 철 지난 병정놀이에 빠져 있다. 대표가 단식을 하고, 의원 84명이 사퇴서를 썼으며, 당은 ‘100일 장정 투쟁’에 나섰다. 낙향했던 아버지가 급히 상경해 물을 일이다. “아들아 무슨 일이니, 군사쿠데타라도 났니?”

아버지의 시대엔 민주화가 화두였다. 국민은 박정희 18년 집권의 종료를 원했고, 전두환·노태우의 항복을 요구했으며, 민자당 정권의 지방자치제 수용을 갈구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장기집권 독재라도 있는가. 국민이 정권의 항복을 원하는가. 정권이 거부하는 국민의 갈구라도 있는가. 아니다. 국정에 잘못이 있는 것과 독재는 다르다. 많은 국민은 노무현 정권의 이념병에 실망해 압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 지금도 대다수는 낡아빠진 이념투쟁보다 경제위기 극복을 희구한다. 미디어법이 야당 총재 제명안이라도 되는가. 80년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미디어 규제를 풀자는 거면 오히려 민주법안이지 어떻게 독재법안인가. 국민이 만들어놓은 다수결을 야당이 거부하니 직권상정으로 처리한 것인데 그것이 신성하고 소중한 의원직을 던질 일인가.

아들의 철 지난 병정놀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능 시험지를 받을 때마다 연필을 던지고 칼을 쥔다. 지난해 쇠고기 촛불파동 때도 민주당은 장외투쟁이란 철 지난 칼을 휘둘렀다. 얼마 전에도 노무현의 죽음을 앞에 놓고 장외투쟁을 벌였다. 사람들이 별로 쳐다보지 않자 머쓱해 하면서 교실에 다시 들어와놓고는 또다시 시험지를 엎고 칼싸움을 하잔다. 민주당은 한국의 명가(名家)다. 문패엔 아버지의 피와 땀과 눈물이 스며 있다. 아들이 그런 집안을 더욱 키우지는 못할 망정 쇠락시켜서야 되겠는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