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미국보다 중국입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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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26면

부동산 가격은 경기에 후행하는 게 보통이다. 경기가 좋아져야 사람들은 집을 새로 사거나 넓힐 마음을 먹는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그랬다.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나서야 부동산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주식→실물경제→부동산의 순으로 살아났다. 이게 상식이다.

고란과 도란도란

그러나 상식이 안 통하는 시장도 있다. 최근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그렇다. 올 들어 잠실주공5단지 112㎡형은 50% 가까이 올랐다. 연초 이후 주식시장 상승률(33%)을 웃돈다.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주가 상승률(50%)과 맞먹는다. 아파트값이, 통상 경기보다 6개월 먼저 움직인다는 주가 뺨치게 기민하게 움직였다. 이쯤 되면 경기 후행지수가 아니라 선행지수인 셈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뱅크가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강남3구 재건축 아파트값 매매 변동률과 경기 선행지수 변동률을 비교한 결과 둘은 대체로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부동산 경기는 실물 경기에 6개월가량 후행한다는 게 통설이지만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예외”라며 “오히려 경기 선행지수와 같다”고 말했다. ‘부동산 불패’라는 과거 학습 효과에 증시 상승률을 웃도는 기대 수익이 합쳐지면서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투자 상품으로 진화했다. 주택시장의 프레임이 바뀐 것이다.

한국투신운용 김영일 주식운용본부장은 올 초 시장을 낙관했다. 판매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펀드 설명회 자리에서 “올해 펀드 투자 수익이 괜찮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당시는 비관론이 팽배하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그가 그렇게 자신한 것은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중국이다. 김 본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중국의 ‘투자’가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면, 위기 이후에는 중국의 ‘소비’가 증시를 밀어 올릴 것으로 봤다. 중국 소비의 힘은 대단하다. 지난달 중국의 월간 자동차 판매 대수는 114만 대를 기록했다. 상반기 판매 대수는 총 609만 대. 같은 기간 480만 대가 팔린 미국을 훨씬 앞서며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으로 등극했다. 거대한 소비 시장을 지척에 둔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좋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많은 애널리스트가 여전히 미국 관련 지표에 집착하지만 이제는 중국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프레임으로 증시를 분석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어떤 프레임으로 시장을 볼 것이냐에 따라 투자 성패가 갈린다. 변화된 주택시장의 프레임을 적극 수용한 투자자들은 연초 저가에 아파트를 잡을 수 있었다. 경기가 바닥을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아파트값에 속만 끓였을 것이다. 증시가 갈림길에 서 있다. 혹시 내가 고집하는 프레임이 철 지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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