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통령이 설명한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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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중앙일보가 주최하는 제3회 '아시아 언론인 포럼' 참석차 방한중인 아시아.태평양지역 언론인 13명을 접견했다.

이 자리에는 홍석현 (洪錫炫) 사장.금창태 (琴昌泰) 부사장.김영희 (金永熙) 대기자 등 중앙일보 관계자 및 신낙균 (申樂均) 문화관광부장관이 배석했다.

金대통령은 이들에게 다과를 베풀며 40여분간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과정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조치 등을 설명하고 아시아지역 언론인들의 질의에 답변했다.

이들은 金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상황진단과 해법 등에 다소 놀라워하며 귀를 기울였다.

金대통령은 특히 아시아지역의 외환위기 상황을 진단하며 아시아 국가간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金대통령은 대화를 나누기 전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자기소개를 받았다.

원형으로 배치된 의자에 참석자들이 착석하자 金대통령은 "차부터 드시라" 고 권유하며 "여러분들을 만나게돼 진심으로 반갑다" 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金대통령은 "이런 좋은 모임을 갖게 해주신 중앙일보 洪사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면서 참석자들을 향해 "기왕에 한국에 왔으니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돌아가라" 고 권유하는 등 가능한 호감을 표시했다.

다음은 金대통령의 모두 (冒頭) 연설 전문.

"우리는 이번에 아시아 외환위기를 보면서 우리가 서로 얼마나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를 알게 됐다.

특히 한 나라의 잘못된 상황이 다른 아시아 나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의 경제위기는 금융위기가 그 특징이랄 수 있다.

아시아 나라들의 금융위기는 두가지다.

하나는 외환위기고, 또다른 하나는 국내적 위기다.

외환위기는 아시아 나라들이 한창 수출을 잘하다가 새로운 도전에 의해 수출이 막히고, 그러다보니 빌려쓴 외국돈을 갚지 못해 찾아온 위기다.

국내적 위기는 각 금융기관들이 부실대출을 해 건전하지 못한 기업들에 마구 돈을 빌려주고 회수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은행이 부실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이 대출해주었다가 회수가 어려운 돈이 1백조를 넘는 규모다.

결국 은행은 빈껍데기만 남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왜 외환위기가 왔고, 국내 금융경색이 있었으며, 어쩌다가 은행이 도산을 했는가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민주주의를 하지 않은 데 근본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안하니까 기업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할 수 없었고, 그러다 보니 기업의 입장에선 권력과 결탁해 돈을 빌려 썼다.

권력과 결탁하면 돈을 쉽게 벌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구조조정도 할 수 없었고 국제 경쟁력도 갖출 수 없었다.

그러니까 무역적자가 늘어나게 됐고, 또 외화부채가 불어났다.

국제경쟁력이 없어 수출이 안되니 돈을 벌어 갚을 수 없었고 결국 국가부도 직전까지 가게 됐다.

또다른 한편으론 민주주의를 안하니까 금융이 관 (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됐다.

우리나라는 은행 주식 한주도 없는 정부가 은행장은 물론 간부들 인사를 했고 부실기업에 무제한으로 돈을 빌려주었다.

그러니 돈이 우수한 기업에 가지 못하고 정치자금을 많이 낸 기업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그것이 기업을 부실화시켰다.

만일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제대로 했다면 정경유착도 관치금융도 없었을 것이며 부정부패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의 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키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경제발전 초기단계에는 권위주의적 요소들이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세계는 정보화산업.지식산업시대로 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 아래에서는 세계가 하나다.

가장 좋고 가장 싼 물건을 만드는 경제를 운영하지 않고는 이제 살아남을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 30대 재벌들을 만나서도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자유다.

권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잘못 보이면 피해를 본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여러분은 여야에 공히 정치자금을 주라. 내가 야당해보니 여당에만 정치자금을 주는 것은 탄환을 한쪽에만 주는 것과 같더라.다만 정치자금을 줄 때는 꼭 법에 의해 주고 그렇지 않으면 일절 주지마라. 정부는 좋아하는 기업도 없고 싫어하는 기업도 없다.

그러나 경제적 입장에서 지지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지지하지 않는 기업도 있다.

돈을 벌어 흑자를 내 세금을 많이 내면 정부는 기업을 애국자로 간주, 지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을 해야 사는 나라니까 수출을 많이 해 흑자를 내면 그 또한 애국자로 보고 지지한다. ' 우리는 외환위기를 국민과 같이 극복해왔다.

당선 당시 38억7천만달러였던 외환보유고가 이제 4백20억달러가 됐다.

국제통화기금 (IMF) 도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할 정도다.

우리는 지금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 공공부문의 개혁, 노사문제의 유연성 확보를 위한 개혁 등 4대 개혁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대체로 잘 돼가고 있다.

이 개혁들은 대개 올해말이면 마무리된다.

그러면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갖추고, 내년부터는 차츰 우리 경제도 소생할 것으로 나는 본다.

다시 한번 얘기하건대 아시아 다른나라들과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병행 발전시키는 것만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견이나 질문이 있으면 얘기해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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